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언더워터’…재난 현실감 살렸지만 '심해 공포물' 진부함은 한계

음향·공간 설계 등으로 심해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 극대화
해저 재난 영화가 걸어온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

영화 '언더워터' 스틸컷
영화 '언더워터' 스틸컷

'심해의 공포'라는 말을 들으면 영화를 좀 본 사람들은 많은 영화들을 떠올릴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연출한 외계 생명체와의 초자연적인 조우를 그린 '어비스'(1989)를 떠올린다면 양호한(?) 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1975)에서 정점을 찍은 해양 생명체와의 사투, 그 이후 무수한 상어 영화와 문어, 피라냐…. 메가 샤크, 자이언트 옥토퍼스 등 원심 분리기로 돌리듯 생산된 출처 불명의 괴생명체에 멸종된 원시 괴물 메가로돈까지. 니모를 찾듯 영화인들은 바다에서 무시무시한 생명체 찾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심해와 괴생명체, 바다와 재난이라는 키워드만으로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의 스토리를 얼추 맞출 정도가 됐다. 최근 영화에서 나름 좋았던 것은 '언더 워터'(2016)와 '47미터'(2016) 정도. 아이디어로 승부한 독립영화였기에 신선한 풍미가 살아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언더 워터'와는 스페이스 키 하나 차이의 다른 영화인 '언더워터'(2020)는 몹시 불리한 영화다.

심해 시추시설에서 지진이 일어나 대원들이 구조를 위해 피신하다가 심해 괴생명체를 만난다는 이야기.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괴작과 망작의 논란이 일었던 한국영화 '7광구'(2011)가 떠오르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언더워터'의 배경은 해저 11km. 심연의 어두움과 엄청난 수압을 견디며 자원을 캐기 위해 해저를 뚫어야 하는 시추시설 캐플러 기지. 어느 날 큰 해저 지진이 일어나면서 구조물들이 파괴된다. 살아남은 사람은 전기 엔지니어 노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비롯한 5명.

이들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해저 기지로 이동해 수면으로 올라갈 탈출 포트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심해에 또 다른 무언가가 이들을 따라온다.

영화 '언더워터' 스틸컷
영화 '언더워터' 스틸컷

'언더워터'의 제작진들은 인간이 심해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스토리의 곁가지들을 모두 쳐 버린다. 대원들이 11km의 해저에서 하는 작업에 대한 설명이나, 해저기지의 구조 등 통상적인 스토리텔링에 필요했던 단서들을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5명의 주인공들은 심연에 갇혀버린다. 극도의 근접촬영(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내 관객들이 함께 느끼도록 애를 썼다.

이런 시도는 불친절해 보일 수 있지만, 많은 상업재난영화가 가졌던 클리셰(진부함이나 상투성)를 저감시키는 효과로 다가온다. 대신 포커스를 맞춘 것은 음향과 공간 설계이다. 기지의 붕괴는 물론이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와 등장인물의 숨 쉬는 소리, 해저를 긁어내리는 파열음과 파이프를 울리는 공명음 등이 관객들을 폐쇄의 공포 속에 몰아넣는다.

낮은 천정과 터널처럼 생긴 좁은 복도 등은 언제 수압으로 압쇄될지 모를 불안을 전해주기도 한다.

또 하나는 실감나는 수중 장면이다. 물 한 방울 없이 물 속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드라이 포 웨트'(Dry for wet) 기법이 동원됐다. 스모그와 필터와 조명 등을 통해 물 속 장면처럼 찍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이미 30년 전부터 써온 것이라 첨단 기법은 아니다. 여기에 디지털 특수효과가 더해지면서 수중 환경이 더 그럴싸하게 묘사됐다.

대원들이 착용하는 육중한 다이빙 슈트의 정교함과 무게감이 수중 효과를 배가시킨다. NASA의 우주복에 영감을 얻어 개별 조각으로 틀을 만든 후 배우들의 몸에 맞춰 제작했다고 한다. 슈트 자체 무게만 해도 29~45kg. 여기에 조명 등을 설치해 배우들에게 입혔으니 굼뜬 수중 움직임에 제법 어울린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헬멧을 쓰고 벗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예 머리를 짧게 깎아 보이시한 매력을 더한다.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이 선장 루시엔 역을 맡았고, 감독은 '더 시그널'(2014)로 독창성을 일정 받았던 윌리엄 유뱅크. 심해 크리처들은 '정글북', '라이프 오브 파이'의 시각효과 감독 블레어 클라크에 의해 탄생됐다.

영화 '언더워터' 스틸컷
영화 '언더워터' 스틸컷

'언더워터'는 제작진들의 노고가 엿보이는 영화다. 음향과 소품 등 몇 가지는 나름 성취가 있기도 하다. 재난 스릴러 팬이라면 꽤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무수히 많은 해저 재난 영화가 걸어온 길에서 크게 빗겨나 있지 않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원들과 괴생명체의 긴장감은 새롭지도, 독창적이지도 않다. 서스펜스가 생명인 재난영화에서 스토리가 가진 태생적인 진부함은 어쩔 도리가 없어 보인다.

그 좋은 기술로 이런 영화를 양산하는 할리우드 공장의 영화 주문 제작 시스템이 궁금하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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