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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모든 시민이 하나되는 축제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몇 년 전 어느 봄날,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멀리 있으니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업계에서 만난 거의 유일한 친구이기에 오랜만의 연락도 반가웠다. 하지만 친구의 제안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우리 에든버러 가지 않을래?' 마침 3년간 열심히 모은 적금통장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다. '좋아! 가자!' 그렇게 나는 세계 최고의 공연 축제가 열린다는 에든버러로 출발했다.

에든버러로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지만 나는 런던에서 국내선을 타고 이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도착한 공항에서는 에든버러를 써놓은 커다란 조형물과 스코틀랜드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넓고 푸른 초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본격적인 축제를 만나기도 전에 에든버러의 풍광에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하지만 중심가로 점점 향하면서 '아... 내가 에든버러에 오긴 왔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온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예약해둔 숙소는 5층짜리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호텔이었다. 에든버러시의 정책에 따라 보존을 위한 리모델링이 허락되지 않아 그 호텔 역시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그 작은 호텔에도 입구에서부터 눈에 닿는 모든 곳에 '에든버러 페스티벌' 책자는 쉽게 눈에 띄었다. 거리로 나섰다. 예약해둔 공연관람을 위해 버스를 타고 좁은 골목을 지나 극장 가까운 곳에 도착했다. 그날 공연은 '에든버러 대학교'의 캠퍼스 한켠에 마련되어 있었다. 평소에도 학생들이 공연을 많이 하는 곳인지 다양한 포스터들이 좁은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500석 규모의 공연장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가득했고 프랑스에서 온 팀의 공연 속에는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웃음과 즐거움이 넘쳤다.

다음 공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온통 축제의 향연이었다. 공연장에서만 이뤄지는 축제가 아닌 거리 곳곳이 축제의 현장이었다. 마치 내가 '이상한 축제의 나라' 속에 빠져있는 느낌이었다. 그날 공연은 한 교회의 교육관 같은 작은 건물의 한 층에서 이뤄진 창작뮤지컬로 스코틀랜드 지역 극단의 작품이었다. 다음 공연은 식당들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서 이뤄지는 작은 연극이었다. 교회 강당에서 이뤄지는 어린이 음악교육용 음악극, 에든버러를 대표하는 어셔홀에서 '사이먼 래틀경'의 지휘와 함께하는 '런던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까지! 숨 막히는 공연의 홍수 속에 밤에는 에든버러 대학 캠퍼스 공간에 마련된 펍에 가서 맥주도 한 잔 마셨다. 전 세계에서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다함께 모여 서로의 여행과 축제의 감동을 나누는 순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밀려왔다. 하루 종일 축제 밖으로 조금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나에게 남아있는 에든버러의 모습이었다.

70년이 넘은 축제의 현장은 과연 명성과 다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짙게 남아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생겨난 축제의 시작이 지금은 도시를 넘어 전 세계가 집중하고 즐기는 축제로 거듭났다. 그 사이에 물론 많은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을 터이지만 온 도시가 함께 즐기는 축제를 위해 다함께 노력했고, 그 결과로 현재의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제14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은 단축되고 또 미뤄졌지만 코로나의 아픔을 이겨내고 시민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축제로 반드시 남게 될 것이다. 모든 시민이 하나 되는 축제, 전 세계가 집중하는 축제를 위해 딤프는 오늘도 최선을 다 할 것이므로.

최보라 DIMF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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