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의 총체적 변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총선 참패를 딛고 다음 대선에서 이기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보수' '자유 우파'라는 말을 강조해서는 안 되며, 중도라는 말도 쓰지 말라고 한다. 또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국가부채 비율 40% 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고, '경제민주화'처럼 새로운 것을 내놓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한다.
김 비대위원장의 말을 종합하면 그 변화라는 것은 보수의 가치나 철학을 통째로 버리거나 최소한 상당한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보수의 철학을 제거한 정책 대안은 그게 무엇이든 문재인 정권이 이미 하고 있거나 아이디어를 선점한 정책들을 뒤늦게 따라가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김종인식(式) 혁신이란 통합당을 민주당의 아류(亞流), 나아가 '2중대'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는 통합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 통합당이 민주당과 무엇이 다른지 변별성(辨別性)이 없기 때문이다. 통합당과 민주당이 다르지 않다면 굳이 통합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이런 어리석은 발상은 김 비대위원장의 천박한 현실 인식의 필연적 결과다. 그는 지금 보수가 죽은 것처럼 말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보수와 진보가 역동적으로 경합하고 있다. 그리고 중도 세력도 엄연히 존재한다. 중도란 말을 쓰지 않는다고 중도 세력이 사라지나?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득표율 차이는 8.4%포인트였다. 작지도 크지도 않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보수의 힘은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8% 정도 부족했다.
이를 메우고 현 집권당에 앞서 나가는 길은 민주당 2중대가 되는 게 아니다. 보수의 가치를 더욱 확고히 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과제다. 이걸 할 자신이 없으면 김 비대위원장의 사퇴는 빠를수록 좋다. 그게 보수 진영에 대한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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