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민" vs "잘못"…내 性인지 감수성, 체크해보자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성인지 감수성 논란
성차별적 내용 글 학생에게 읽게 한 교수, 제자에게 성적 표현 댓글 단 초등 교사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 반복” 지적…“인성교육처럼 지속적으로 고정관념 바꿔야”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엄중 처벌 및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많은 사건과 논란들이 반짝 관심을 받고 사라진다. 관심에 그치지 않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으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들도 그 중 하나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최근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직원 성추행, 텔레그램 n번방 사건까지 미흡한 젠더 의식으로 인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잘못된 성 고정관념을 뿌리뽑는 것에서부터 문제해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성인지 감수성 점검 체크리스트
성인지 감수성 점검 체크리스트

◆정치, 교육 등 분야 가리지않고 논란

지난 25일 서울의 한 사립대 A 교수가 자신이 2009년 블로그에 쓴 글을 읽는 것을 1학기 중간고사 과제로 냈는데, 이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 학교 학생회 등에 따르면 A 교수는 글에 남성을 '물뿌리개',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면서 "시들다가 말라 죽으면 남자 손해"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일부 학생들은 이 글이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인식이 포함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A 교수는 '개인 생각을 블로그에 10년 전에 써놓은 것을 문제 삼는 것은 과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져, 논란을 키웠다.

앞서 지난달에는 울산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B 교사가 제자들에게 속옷 빨래 숙제를 내고, 인증 사진에 성적 표현이 담긴 댓글을 달아 물의를 빚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해당 교사를 파면해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한달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B 교사는 지난 29일, 결국 교원 지위를 박탈하는 '파면' 처분을 받았다.

논란 발생 이후 울산시교육청은 부랴부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전문 상담 기관 연계를 지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교직원 예방 교육 대책을 마련하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섰다. A 교수가 속한 대학도 논란이 확산되자 교수의 강의를 중단하고, 학내 성평등센터 조사위원회에 사건을 회부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에는 결국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지역의 한 교육계 인사는 "교육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기업 등에서도 종종 성인지 감수성 결여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나. 곪은 고름이 터지고나서야 뒤늦게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교육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잘못된 성 고정관념이 원인

그렇다고 관련 교육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구여성가족재단 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 등에 따르면 국가기관과 지자체, 학교에서는 관련 법령에 의해 양성평등교육과 성폭력예방교육 등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이들 의무교육대상 기관 외에 여성가족부가 별도로 각 지역마다 협력기관을 공모해 양성평등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교육의 기회가 늘고 있음에도 관련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사회 전반에 고착화된, 잘못된 성별 고정관념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정영태 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장은 "교육의 기회가 많지만 여전히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지 않은 측면은 해결돼야할 문제"라며 "정치, 사회, 교육 등 전반적으로 남·여로 이분법화된 성별 고정관념이 뿌리 깊고,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김소정 젠더발전소(대구시교육청 지정 성인식개선 재발방지 특별교육기관) 공동대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진실인 줄 알고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문제다. 결국 성 차별 논란이 여성 혐오, 남성 혐오로 이어지고 갈등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관련 사건들이 반짝 관심에 그치다보니 문제가 제대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된다.

정영태 센터장은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갑작스럽게 관심이 폭발하지만, 그만큼 빨리 시들해지다보니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도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지속적, 반복적 의식개선 교육이 해답

전문가들은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이 인식의 전환과 실생활에서의 실천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허지원 젠더발전소 공동대표는 "문제를 저지른 이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땐 웃어놓고 왜 이제와서 그러냐'는 것. 연령대가 높고, 그에 맞는 지위를 가진 이들은 올바른 젠더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을 외부로 거침없이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 때 피해자는 곧바로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자신이 감수해야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주변인들은 애매한 상황을 넘기고자 그냥 웃어넘겨버린다. 이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긍정적 강화만을 불러올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투 초반만 해도 '이러한 말은 하지마세요', '잘못된 점은 잘못됐다고 말하세요'라고 교육했지만, 이제는 주변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함께 연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인식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교육 콘텐츠가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사회의 어느 한켠에서만 이뤄지기보다 인성교육처럼 지속적, 반복적으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도 강조한다. 김소정 공동대표는 "교육이 단순히 '하지마라'가 아니라 인식 깊은 곳에서부터 바꿔나가야하는데, 생각을 바꾸고 말과 행동으로 나오게하는 것이 사실 참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성인지 감수성 점검 체크리스트 결과
성인지 감수성 점검 체크리스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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