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출시된 곡이지만 너무 과하다는 혹평을 받으며 망했던 비의 노래 '깡'이 최근 다시 음원차트에 들어와 역주행을 시작했다.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지며 갖가지 재치 있는 댓글이 붙는 '밈 현상'이 벌어지면서다. 도대체 이런 밈 현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차트 역주행 만든 깡 신드롬
'1일1깡'이란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떠돈다. 하루에 한 번씩 비의 노래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항간에는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을 해야한다는 '1일3깡' 이야기도 나오고, 하루에 몇 깡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깡 공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최근 불고 있는 '깡 신드롬'의 양상이다. 도대체 이미 과거에 실패한 노래가 어째서 지금 다시 신드롬의 주인공이 된 걸까.
'깡'은 비가 2017년 냈던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발매 당시 시대에 뒤떨어진 과한 춤이라며 혹평과 조롱을 받고 망한 그 곡이 다시 살아난 건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한 여고생 유튜버가 패러디 영상을 올린 게 그 발화점이 되었다. 약 20초 분량으로 과장된 비의 춤과 뮤직비디오를 따라한 이 영상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무려 조회수 400만(6월 1일 현재)을 훌쩍 뛰어넘었다.
덩달아 '깡'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에도 불이 붙었다. 지금까지 무려 1천200만 조회수를 넘긴 뮤직비디오에는 댓글만 13만 건이 넘게 달렸다. 뮤직비디오도 재밌지만 여기 달린 댓글을 읽는 것이 더 재밌다는 반응이 쏟아지면서 댓글 창은 일종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 '재간둥이 표정 금지', 꼬만춤 금지' 같은, 비가 추는 특유의 춤 동작이나 행동들을 지적하며 금지하는 '시무20조' 같은 조항들이 댓글로 붙을 정도로 화제가 된 '깡'은 비를 갑작스레 화제의 중심으로 이끌어냈다.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는 어찌 보면 조롱에 가까운 이 댓글 현상을 자신 또한 즐기고 있다며 선선히 받아들임으로써 신드롬을 더 확산시켰다. 결국 화제가 된 '깡'은 3년 만에 음원 차트에 재진입시키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깡 신드롬에 담긴 인터넷 밈
깡 신드롬은 '밈 현상' 혹은 '인터넷 밈(Meme)'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대중의 콘텐츠 소비방식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본래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사용한 용어다. 신체적 유전을 넘어 종교, 사상, 문화 같은 정신적 사유 활동까지 유전되고 전파되는 현상을 그는 '밈'이라 불렀다. 여기서 따온 '인터넷 밈'은 '기존의 콘텐츠가 대중을 통해 유통되고 재생산되면서 생기는 문화적 요소'의 의미로 지칭되었다. 여기서 중요해진 건 소비 방식의 흐름이다. 과거 콘텐츠는 생산자가 만들고 소비자가 소비하는 방식으로 흘러갔지만, 이제는 거꾸로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재생산되기도 하고 재해석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과거 KBS '가요탑10' 같은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양준일 같은 옛 가수가 현재의 젊은 세대들에 의해 재발견되고 선택되어 '탑골 GD'로 재해석된 사례는 대표적인 인터넷 밈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또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할로 등장해 "사딸라!"를 외쳤던 김영철과,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이란 캐릭터로 "묻고 더블로 가!"를 외쳤던 김응수가 '짤방'이라는 형태로 화제를 일으켜 두 사람 모두 햄버거 광고 모델을 하게 된 것도 인터넷 밈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인터넷 밈의 파괴력이 가진 양면
인터넷 밈은 최근 들어 '챌린지' 형태의 캠페인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코가 발표한 '아무 노래'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 동작으로 인터넷 밈을 일으켰다. 이효리나 강민경 같은 셀럽들 또한 참여하게 되면서 이 놀이는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영상 조회수는 놀랍게도 1억 뷰를 넘어섰다. 이처럼 챌린지 형태의 인터넷 밈은 콘텐츠 마케팅에 있어서 중요한 새로운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파급력은 인터넷 밈이 공익적 의미를 띠는 챌린지와 접목되었을 때 그 긍정적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루게릭병 환자를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나 최근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헌신한 의료진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벌어졌던 '덕분에 챌린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반면 무분별한 상업적 마케팅 수단으로 점점 부각되고 있는 인터넷 밈은 그 영향력만큼 드리워진 그림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집중된 조롱이나 비난 같은 부정적 댓글들이 자칫 인터넷 밈을 타고 놀이처럼 번지게 된다면 그 부정적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비의 깡 신드롬은 '인신공격'이 아닌 트렌드에 맞지 않는 콘텐츠에 대한 풍자에 머물렀기 때문에 선선히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놀이가 될 수 있었지만, 만일 그 선을 넘게 된다면 그저 웃으며 넘길 수는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터넷 밈은 이 힘을 바람직하게 이끌 수 있는 인터넷 문화와 발을 맞출 때 긍정적인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이제 그만한 책임감 또한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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