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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K방역'…위대한 대구시민이 원동력

[대구가 K방역이다] (상)코로나 극복 모범답안 비결은

2일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K방역 성공의 주인공인 대구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2일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K방역 성공의 주인공인 대구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지난 2월 29일, 대구 최대 번화가 동성로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한산했다. 이따금 행인이 오갔지만 마스크를 둘러쓴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이날 하루 대구에는 741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 2월 18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최대 규모였다. 시민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고,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아걸었다.

이후 3개월여, 충격과 공포의 코로나19 사태가 드디어 전환점을 맞았다. 하루 수백 명씩 폭증했던 신규 확진자 수가 0명을 기록하는 날이 더 많아졌고, 수천명에 달했던 격리자 수도 두 자릿수까지 줄었다.

이는 대구시민과 방역당국, 의료계가 '대구에서 막아야 한다'는 각오로 뭉쳐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 극복해낸 결과다. 해외 각국이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사례로 꼽으며 앞다퉈 조명한 'K방역'의 시작은 바로 대구였다. 미증유의 감염병 대위기를 극복해낸 '대구의 힘', 그 원천은 어디에 있었을까?

코로나19 대구 확진자 추이
코로나19 대구 확진자 추이

◆ 암흑 속 밝게 빛난 '시민정신'

"중국 우한이나 유럽과 달리 대구는 봉쇄되지 않았고,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집에 머물렀다. 시민들은 세계적으로 시민 자유를 시험대에 올린 코로나19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독일의 대표적 주간 시사잡지 '슈피겔'이 쓴 대로, 대구는 강제로 시민들의 이동을 막는 등 이른바 '도시 봉쇄'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코로나19 사태를 안정시켰다.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민주주의 선진국'이라 여겼던 국가들조차 코로나19 앞에서는 강도 높은 봉쇄조치를 내린 점과 대조적이다.

봉쇄 없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은 가장 큰 원동력은 '시민의식'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어디든 갈 수 있었고,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었고, 분노와 절망을 쏟아낼 수도 있었지만 대구시민들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 5월 28일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 마당에 봉축법요식 참석자를 위한 의자들이 1m 간격으로 놓여 있는 모습. 동화사는 30일 열린 봉축법요식에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최소 1m 이상 간격을 두고 모든 행사를 진행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지난 5월 28일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 마당에 봉축법요식 참석자를 위한 의자들이 1m 간격으로 놓여 있는 모습. 동화사는 30일 열린 봉축법요식에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돼 최소 1m 이상 간격을 두고 모든 행사를 진행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대구시가 '외출 자제'를 요청하며 '3·28 대구운동'을 시작하자 북적이던 대구 도심은 순식간에 '침묵의 도시'가 됐다. 2월 네번째 주 기준 대구도시철도 이용객 수는 전년 평균의 23.7%, 시내버스 이용객은 29.9% 수준으로 폭락했다.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로 긴 줄이 늘어섰지만, 사재기는 없었다.

특히 '다른 지역에 바이러스를 옮겨선 안 된다'는 판단에 대구시민들은 고립을 자처했다. 노인들은 "대구는 위험하니 서울로 오라"는 자녀들의 말에 '괜찮으니 건강 관리 잘 하라'며 손사래를 쳤다. 2월 네번째 주 대구의 철도 이용객 수는 전년 평균의 13%, 고속·시외버스 이용객은 20.3%까지 떨어졌다.

시민들은 "나도 감염됐을 수 있다"는 생각에 집에 머물렀고, 꼭 필요한 외출에는 마스크로 입과 코를 꽁꽁 가렸다. 사태가 진정된 뒤부터 조심스럽게 일상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은 가지 않으려 한다.

대구시가 지난 17~21일 만 20세 이상 대구시민 1천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코로나19 극복의 원동력으로 '의료진과 소방, 군 장병,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의 노력'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을 첫 손에 꼽았다. 3·28 대구운동이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됐다는 의견도 87.7%에 달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다소 안정된 지난 4월 대구를 찾아 "긴급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대구경북의 시민의식과 의료진들의 희생, 공직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희생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드린다"고 했다.

코로나19 환자들이 생활 치료를 받았던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숙소 앞에서 환자와 의료진 및 관련 종사자들을 위한 치유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코로나19 환자들이 생활 치료를 받았던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숙소 앞에서 환자와 의료진 및 관련 종사자들을 위한 치유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 지방·중앙 연대가 만든 생활치료센터

매일 수백 명씩 환자가 폭증하는 상황 속에서 'K방역'의 핵심 인프라는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전국에 퍼진 '생활치료센터'였다.

생활치료센터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확진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벌어진 '병상 대란' 와중에 첫 선을 보였다. 확보되는 병상 수가 환자 증가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확진 판정을 받고도 입원을 기다리다 집에서 숨지는 사례까지 발생하던 시기였다.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연대'가 힘을 발휘했다. 대구시와 지역 의료계는 '중증과 경증 환자를 분리해 치료해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고, 방역당국은 메르스 사태 당시 만들어진 '음압병상 격리'라는 대응 지침을 과감히 바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병상 확보를 진두지휘하고자 2월 25일부터 아예 대구에 머무르며 '원정 총리실'을 차렸다. 이후 17일 간 전국 각지를 돌며 기업·지자체를 설득, 생활치료센터로 쓸 공간을 확보했다.

그 결과 대구 동구 중앙교육연수원을 시작으로 세계 최초의 '생활치료센터'가 마련됐고, 60일 간 15곳의 생활치료센터에 3천25명의 코로나19 경증 환자가 입소해 치료를 받았다. 3월 8일 하루 동안만 580여명의 환자가 입소했다. 대부분이 대구경북 시도민이었다.

병상이 충분히 확보되자 입원을 기다리다 숨지는 안타까운 사례는 사라졌다. 지난 15일 총선에서는 생활치료센터에도 사전투표소가 마련돼 확진 환자와 의료진 등 종사자들의 참정권을 보장해주기도 했다. 외신에서는 차량이동형 검사(드라이브 스루)와 함께 생활치료센터를 'K방역'의 핵심으로 꼽았다.

이를 두고 권영진 대구시장은 "정세균 국무총리께서 대구에 상주하며 전국적으로 시설 확보를 진두지휘하는 등 중앙과 지방이 얻어낸 '연대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인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나온 간호사들이 병동 밖 컨테이너 휴게실에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다. 매일신문DB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인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나온 간호사들이 병동 밖 컨테이너 휴게실에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다. 매일신문DB

◆'시민 방패' 자처한 의료진 헌신

시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위생수칙 준수로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면, 최전방에는 의료진이 있었다. 쏟아지는 피로와 감염 위험에도 전국에서 몰려온 의료진들은 밤낮으로 싸우며 코로나19를 안정시켰다.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은 지난 2월 25일 동료 의사들에게 호소문을 보내 "삶의 터전 대구가 엄청난 의료재난 사태를 맞았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댓가, 한 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하자"고 호소했다.

이 회장의 한 마디에 전국의 의사들과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의료진들이 대구 현장 투입을 자원했다. 대구경북에서만 의료진 4천여명이 선별진료소와 생활치료센터, 병원에서 사투를 벌였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119구급대원 300여명은 하루 수백 명의 환자를 생활치료센터로, 병원으로 이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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