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확산된 세입자 월세 감면 운동은 지난 2월 대구에서 시작됐다. 서문시장의 한 상가 주인이 "월세를 받지 않겠다"며 20여 명의 세입자에게 돌린 문자가 발단이 됐다. 건물주는 "그동안 도움받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이라며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끝까지 꺼렸다.
이번 사례만 보더라도 코로나 정국에서 보여준 대구의 시민 의식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할 만하다. 적어도 서울에서 태어나 이제 막 대구 생활 6개월 차에 접어든 기자의 시각에선 말이다.
직업 특성상 서울-대구 간 왕래가 잦은데, 가장 큰 차이점은 택시운전사들의 마스크 착용이다. 수도권에선 답답하다는 이유로 절반가량은 착용하지 않지만 지난 4개월간 대구에서는 같은 상황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좁은 차 안에서 내만 편하자고 (마스크) 벗으마 어데 내만 걸리능교. 내 손님, 그 가족들, 싹 다 안 걸리겠능교." 오랜 마스크 착용으로 귀에 진물까지 보이던 한 대구의 운전기사 말이다.
대구의 거리두기 운동은 어느 지역보다 철저했다. 젊음의 상징인 동성로는 한산했고, 경로당은 폐쇄하는 등 거리두기에 남녀노소가 없었다.
월세 감면에도 서문시장 상인들은 스스로 문을 닫았다. 손님의 드문 발길도 그렇지만 방역 취약 지역으로 판단해 6·25전쟁 통에도 하지 않았던 임시 폐업을 상인들이 나서서 결정한 것이다. 다른 상권도 방역을 이유로 한동안 문을 닫았고, 교회·사찰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등 대구 시민들은 한동안 금전과 '믿음'까지 양보하며 코로나와 싸웠다.
마스크 미착용자에 대한 대중교통 이용 금지 등 코로나 방역 대책도 대구가 선도했다. 대책 마련을 공부하다 '역학조사' 전문가가 된 권영진 시장은 5개월째 시청 집무실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중증 치매 환자인 어머니와도 생이별 중이다. 그러면서 휴일에 제 돈 내고 지인과 골프를 쳤다는 이유로 수족과 같은 공직자를 잘라내는 등 코로나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행정 기준을 적용했다.
이 같은 시민 의식이 '총선 싹쓸이'로 인해 또다시 '보수꼴통'으로 폄훼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총선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25곳의 TK 지역구 가운데 무려 9명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30% 이상의 득표를 기록해, 당선 가능 고지에 올라섰다. 또 경북 경주 1곳을 제외하면 민주당 후보 전원은 15% 이상을 득표해 선거 비용을 모두 돌려받았다. 선거비 보전은 다음 총선 도전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득표 기준이다. 자칫 상대를 헐뜯는 것 같아서 정확한 수치를 비교 않겠으나, 호남에서 통합당 후보들이 얻어낸 결과와는 크게 다른 점은 확실하다.
특히 중요한 점은 지역에서 진보 정당 후보자들의 득표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경북이 어찌 꼴통일 수가 있겠는가? 오히려 1인 승자 독식 구조의 현행 선거법 허점으로 책임을 돌려야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바닥을 치는 지역 경제를 볼 때 21대 국회에서 TK 위상은 시급한 숙제다. 민주당의 전 상임위원장 독식이 현실화되거나, 미래통합당이 중도를 표방하며 보수층을 소외시킬 경우 지역의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당당히 외치며 대외 설득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대구경북은 꼴통 보수가 아니라고! 코로나와 싸워 온 정직하고 착한 시민이 있을 뿐이라고! '개발'이란 유혹을 뿌리치고 후세대를 위한 근대 유산을 가장 많이 보전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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