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 명에 이르는 확진자를 내며 대구경북을 휩쓸었던 집단감염 사태가 다소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 각국의 확산이 '현재 진행형'이고, 국내에서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 우려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을 경고한다. 집단감염을 틈타 방역망 밖으로 숨어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언제 다시 폭발적인 유행을 일으킬 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우려대로 대유행이 다시 벌어진다면, 1차 대유행 당시 가장 치열한 사투를 벌였던 '대구형 K방역'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 롤모델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포스트 K방역' 대구가 롤모델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세계 경제는 전례없는 충격을 입었다. 각국은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을 차단하는 이른바 '락다운'(Lockdown) 조치를 내렸고, 공장들도 감염 우려로 줄줄이 문을 닫았다.
지난달 2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2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 체감도를 1997년 외환위기보다 평균 약 15%, 2008년 금융위기보다는 약 50% 큰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언제까지고 문을 닫아건 채 방역에만 집중하기엔 경제적 피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상황. 미국과 유럽 등 코로나19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세계 각국이 '생활방역'을 내걸고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대구시가 시민 참여를 통해 마련한 '대구형 생활방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형태로 현장에서 공감하고 지키는 예방수칙이 중요해서다.
대구시 관계자는 "전염이 빠른 코로나19를 차단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시민들이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수칙이 필수"라며 "방역당국 주도의 하향식 구조가 아닌, 문화·체육·교통·종교·교육·돌봄 등 분야별 현장을 잘 아는 시민들이 상향식 구조로 일상생활에 녹아들 수 있는 세부 예방수칙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이미 대구시는 시민 200여 명이 참여한 '코로나19 극복 범시민 대책위원회'를 구성, 5차례에 걸친 회의를 진행했다. 코로나19 완치 학생·교직원에 대한 자율적 재검사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굵직한 방역 대책이 시민 참여로 논의됐다. 오는 9일 6차 회의에서도 '심리방역'을 비롯한 관련 사안들이 토론 주제로 오를 예정이다.

◆"대구시민이 '최강 백신'"
아무리 좋은 정책들이 있다고 해도 대구시민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 없다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직접 예방수칙을 만들고, 이에 맞춰 행동하는 일 모두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 없이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구시가 시민 참여형 생활방역을 표방하면서 '대구시민이 최강 백신'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
민복기 대구시의사회 코로나19대책본부장은 "외신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등 시민들을 어떻게 방역대책에 동참시켰는지에 가장 큰 관심을 갖는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청하면서도 과연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 많았는데,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전문가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잘해줬다. 지금의 안정세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생활방역 수칙 대신 지역에 적용하고 있는 '대구형 7대 생활수칙'은 정부 수칙보다 한층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가령 정부 수칙의 '아프면 3~4일 집에 머물기'는 '증상이 있으면 바로 검사받기'로 강화됐고, '마스크 착용 생활화'와 '집회·모임·회식 자제하기'가 추가됐다.
이처럼 수칙 내용이 강화됐는데도 무난하게 시민 생활에 맞춰 적용되면서 '대구형 방역모델'의 빠른 정착을 알렸다. 최근 안정세에 접어든 코로나19 확산세는 이 '대구형 방역모델'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의료계의 평가다.
김신우 대구시 감염병관리지원단장은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지역감염 확산을 보면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즉시 검사를 강조했던 점이 대구 감염 안정세에는 큰 도움이 됐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또 "대구시민들이 마스크 착용 등 생활수칙을 잘 지켜준 덕"이라며 "적극적인 검사와 환자 치료의 중심에 방역당국과 의료계가 있다면, 예방의 주축은 시민이다. 시민사회가 지금처럼 수준 높은 방역의식을 보여준다면 대구는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차 대유행 방역도 앞서 간다
대구시는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대유행 때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몸소 겪었던 현장의 문제들을 보완해 대비 계획을 마련했다. 특히 지금보다 더 많은 확진자가 나올 것을 가정한 상태에서 지역 내 자원만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을 세웠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는 2차 대유행에 대비하고자 검사 단계부터 확진과 역학조사, 격리, 치료 등 방역의 모든 과정을 '업그레이드'했다. 인력과 병상, 물품 등을 확충하고, 방역체계를 개선할 방침이다. 이 같은 계획은 대구 인구의 0.5%인 1만2천 명이 감염된다는 가정 아래 세워진 것이다. 4일 현재 확진자 6천885명의 1.7배인 상황을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위중한 환자가 병실을 구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하고자 환자 분류체계를 개선할 계획이다. 지난 대유행 때는 증상의 경중과 상관없이 확진 받은 순서대로 입원한 탓에 중증 환자가 병실이 모자라 집에서 대기하던 일이 발생했다. 이에 사태 초기부터 병원과 생활치료센터를 함께 가동해 중증도에 따라 입원과 생활치료를 나누도록 체계를 보완한다.
또 확진돼도 입원이 어려운 고위험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다. 다른 환자와 함께 입원하기 어려운 장기요양환자와 정신질환자, 임산부, 아동 등을 전담할 시설을 지정하고,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사회복지생활시설과 요양병원 등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이와 함께 하루 검체·검사량을 더 늘릴 예정이다.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비롯해 워킹 스루와 드라이브 스루 등을 통해 현재 하루 3천360건 수준인 검체 역량을 9천80건까지 대폭 확충한다. 보건환경연구원과 병원들의 검사도 확대한다.
아울러 역학조사관을 6명에서 30명으로 늘리고, 의료인력(의사 372명, 간호사 2천416명 등)도 확보한다.
이와 같은 대구시의 대책들은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달 1일 대구시의 2차 대유행 대비 계획은 국무조정실에 전달됐다. 지역의 2차 대유행 준비 상황을 파악하고자 정부 측이 먼저 자료 요청을 해왔다.
앞서 지난달 13일에는 행정안전부 주민복지서비스개편추진단장 등이 대구를 방문하기도 했다. 재난 대응·회복의 민관 협력 모범 사례 현장을 찾기 위해서다. 당시 '대구시 범시민대책위원회'의 조직 구성과 운영 현황, 민관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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