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페스티벌을 온몸으로 흠뻑 느낀 후, 나는 다시 런던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에든버러를 향한 설렘이 컸던 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스케줄이 런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년 전 브로드웨이 출장길에서도 시도했었지만 80만원이 넘는 티켓 가격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터라 관람 넉 달 전 예약한 30만원이나 하는 티켓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침내 그 작품을 영접하는 날, 나는 빨간색 2층 버스 앞머리에 앉아 극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 극장과 사인물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버스에서 뛰어내리듯 하차했다. 2015년 이후 뮤지컬계에서 끊임없는 붐을 일으키고 있는 뮤지컬 '해밀턴'이 바로 그것이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 10달러 지폐 속의 주인공으로서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오른팔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사람으로 초대 재무장관까지 역임했지만 그의 사후에 정적(政敵)들의 개입으로 흔적이 많이 사라져 미국인조차도 잘 알기 힘든 역사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전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작품의 대본과 곡, 가사까지 모두 쓰고도 초연 무대의 주인공 '해밀턴' 역할을 맡아 직접 공연까지 하면서 전 세계적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린 마뉴엘 미란다'는 10여년의 시간을 들여 창작에 창작을 거듭한 결과로 본 작품을 브로드웨이에 선보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에 2016년 제70회 토니어워즈에서 역대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기록을 남겼고 11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중심을 들여다보면 오랜 기간 해밀턴이라는 인물을 연구하면서 단순히 그를 건국의 영웅으로 미화시키지 않고 그의 희노애락과 인간적인 면까지도 표현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힙합과 랩이라는 뮤지컬에서는 다소 낯선 음악 장르를 가지고 완성도 있게 표현해낸 결과라고 보여진다. 그렇기에 내가 봤던 그날의 극장 속에서 런던의 시민들도 남의 나라 역사적 인물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하면서 작품을 즐기고 있었고 때로는 함성과 환호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 인물에 대한 집중과 열정이 국적을 초월하여 공감을 얻어내는 위대한 작품으로 남겨졌다. 그렇게 나도 역사의 현장 속에 녹아들어 함께 있었다.
코로나19라는 사상 유래 없는 재난 속에서도 역대 최다 지원자들이 몰린 'DIMF 뮤지컬아카데미'가 마침내 시작됐다. 개최 시기도 미뤄지고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식지 않았던 뮤지컬에 대한 열정이 아카데미 현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강의를 한 번 진행하기 위해선 매일 매일 지켜야 할 수칙도 거쳐야 할 관문도 많아서 이 모든 것들이 마치 역경 없는 세상, 시련 없는 세대에게 허락되는 작은 고난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이 어려운 관문을 뚫고 배움의 현장으로 나오는 교육생들이 이 시간들을 더욱 소중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더운 날씨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 체온이 조금이라도 높으면 강의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 속에 불굴의 의지로 자기 자신을, 자신의 작품을 성장시켜 나갔으면 한다. 마치 뮤지컬 '해밀턴'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삶과 인생, 역사가 묻어나지만 인간적이며 어떠한 제약도 느껴지지 않는 음악의 형식 속에서도 정통 뮤지컬을 제대로 관통하는 모습이듯이 스스로를 또 자신의 작품들을 그렇게 빚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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