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산책] 대북 전단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김여정 신경질적 반응 4시간 뒤…통일부 "대북 전단 살포 중단해야"
北 군사합의 위반 땐 침묵하더니…대한민국의 통일부 맞는지 의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자 신문 2면 상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자 신문 2면 상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남조선 당국의 묵인 하에 탈북자 쓰레기들이 반공화국 적대행위 감행'을 게재했다.[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

4일 새벽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한국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남북 군사 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판문점 선언과 군사 합의서를 거론하며 "이런 행위가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로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 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군사 합의 파기 등을 '최악의 국면'의 예로 들었다.

김여정은 "나는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며 외교적으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전단 살포를 한 탈북자들을 똥개, 쓰레기, 인간 추물, 바보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해 가면서 비난했다. 북한 당국이 비외교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늘 있는 일이지만 이런 담화가 로열패밀리이자 북한의 실질적 2인자로 볼 수 있는 김여정의 명의로 발표되었다는 것이 좀 의외다. 북한과 같은 절대적 독재국가에서는 보통 로열패밀리는 우아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주로 집중하고 악역은 보통 그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여정이 너무 젊어 악역을 아랫사람들에게 미루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전략 전술 개념이 없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특이한 일이긴 하다.

이번에 김여정이 문제 삼은 전단 살포는 지난 5월 31일 자유북한운동연합(주로 탈북민으로 구성)이 김포에서 한 것이다. 대북 전단 50만 장과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천 장, 메모리카드 1천 개를 대형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대북 전단에는 '7기 4차 당 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 핵무기로 충격적 행동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 등의 문구가 쓰였다고 한다.

대북 전단이 북한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밀리에 전단 살포를 해온 몇 개 단체들에서 풍선 속에 GPS 신호 발신기를 넣어 올려 보낸 결과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계절도 다르고 풍향, 풍속도 다른 30차례의 결과 중 20차례는 휴전선 이남 지역에 떨어졌고 3차례는 비무장지대 내에, 5차례는 북한의 산악 지역에, 2차례는 북한군 주둔 지역에 떨어졌다. 한반도 상공에는 늘 편서풍이 강하게 불고 따라서 지표면의 풍향과 상관없이 풍선은 일정 고도 이상 올라가면 아주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휴전선이 동쪽으로 갈수록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휴전선 이남 지역에 떨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드론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드론의 이용에는 수없이 많은 규제가 있지만 특히 이런 목적으로 드론을 이용하는 것은 절대적 불법이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때 관련 법과 규정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국방부를 비롯한 유관 부처들에서 그때마다 강력하게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이런 시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시도해 보나 마나다.

북한에 별로 위협이 되지도 않는 풍선을 이용한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첫째, 전단의 내용에는 북한이 '최고 존엄'이라고 부르는 북한 지도자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북한이 그런 전단의 존재 자체를 못 견뎌하는 것이다. 둘째, 핵,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도발을 하거나 아니면 기타 적대적 행동을 해야 할 때를 대비하여 명분을 축적하려는 면이 있다. 셋째, 전단을 그냥 방치한다면 나중에 정권교체가 되었을 때 드론 등 신기술을 이용한 전단 살포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아예 싹을 잘라 버리려는 것이다.

김여정이 "광대놀음을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한 지 불과 4시간 만에 통일부 대변인은 대북 전단 살포의 중단을 요구하는 브리핑을 했다. 대북 전단 살포를 불법화하는 법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이 여러 차례 남북 군사 합의를 위반했을 때는 일언반구도 없다가 김여정이 한마디 하니 신속하게 반응하는 통일부가 과연 대한민국의 통일부가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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