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의 뉴딜'은 말 그대로 새로운 'deal'이었다. 댐을 짓고 다리를 놓긴 했어도 본질이 'development'는 아니었다. '새로운 사회적 합의의 도출' 또는 '사회가 작동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드는 것' 그게 '루스벨트의 뉴딜'이었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이 뉴딜을 본뜬 듯한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앞으로 5년간 76조원이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미래 발전 전략, 즉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 대전환을 이뤄내게 하는 미래 비전임을 대통령이 직접 밝혔다. 그 목표가 얼핏 '루스벨트의 뉴딜'을 닮았다. 내용은 3대 핵심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요약하면 '디지털 뉴딜×그린 뉴딜×휴먼 뉴딜=한국판 뉴딜'이 된다. 여기서 '곱하기'는 프로젝트 간의 시너지 효과를 뜻한다. 정책의 명칭과 목표는 비슷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내용이니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디지털 뉴딜은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 디지털 포용 및 안전망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 등에 13조원을 투입해 33만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업이다. 공공데이터 개방, 교육 현장의 디지털 인프라 구축, 초고속 인터넷망 확충, 비대면 디지털 건강관리시스템 구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새삼스러운 게 하나도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들이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일상처럼 진행될 것들이다.
그린 뉴딜도 그렇다.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등, 그 내용이 과거 MB 정부의 녹색성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그때가 나름 새로웠다.
휴먼 뉴딜, 즉 고용안전망 강화 프로젝트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가 당연히 노력해야 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봐선 한국판 뉴딜에서 국가 대전환의 동력이 생겨날 것 같지가 않다. 3대 핵심 프로젝트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 같지도 않다. 요즘 유행하는 IT 용어들로 내용이 가득 채워져 있을 뿐 모두 뻔한 말들인 데다 누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파악이 안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할 구분이 없고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할 일도 뒤섞여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게 없다. 심지어 지금까지 정부가 이야기해온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 소득주도성장과 이번에 발표한 한국판 뉴딜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한국판 뉴딜에는 사회적 기업과 일반 기업의 차이도 없다. 돈을 벌려고 기업을 하지 일자리를 만들려고 기업을 하지는 않는다. 구글, 애플, 아마존, 그 어떤 기업도 '미국 정부의 육성'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유니콘기업' 또한 편의상 그렇게 부를 뿐이다. 그걸 정부가 언제까지 몇 개를 육성하겠다고 나서는 건 가장 창의적인 것에 대한 가장 비창의적인 접근의 전형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IT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일자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정부가 그것을 육성해서가 아니라 청년들에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돈이 되면 기업이 몰리고 희망이 보이면 청년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정부는 그 고민을 해야 한다. 노량진으로 몰리는 청년들이 다른 곳에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도전하다 실패해도 희망은 또 생길 거라는 믿음이 들게 해야 한다. 일자리는 그래야 생긴다.
기술 기획, 디자인 등 지식노동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런 것에 관한 비용은 항목조차 두지 않는 관공서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지식정보산업 육성을 외치는 건 그저 허망할 뿐이다. 먼저 정부의 잘못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기업들에 제안을 요청했으면 선정되지 않은 기업에도 기준을 마련해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클 것이다. 나라엔 더 좋은 생각이 쌓일 것이고 기업은 힘을 얻을 것이며 그만큼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페이스북은 미국 정부가 만든 게 아니다. 방탄소년단 역시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게 아니다. 강력한 콘텐츠는 플랫폼이 되고 플랫폼은 서드 파티(third party)를 창출해 내지만 이는 모두 시장의 영역이고 창의적 도전자의 몫이다. 다음 달에 관계 부처 합동으로 한국판 뉴딜의 종합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그 계획에는 정부가 진짜 해야 할 역할과 비전, 그리고 새로운 희망이 담겨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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