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태선의 디자인,가치를 말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김태선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디자인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

여름이 성큼 앞에 와 있다. 6월, 꽃보다 신록이 아름다운 계절,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미국 뉴욕시이다. 그곳의 강렬한 태양빛이 만든 장면이 잊히질 않는다.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들어섰을 때였다. 웅장한 빌딩의 협곡이 펼쳐졌다. 그리고 각 건물의 외벽 위로 뉴욕의 강렬한 태양빛이 만든 다른 건물의 그림자가 놓이자, 건물 외벽에 사선으로 선명한 흑백 대비가 만들어졌다. 너무나 다른 두 존재, 빛과 그림자, 흑과 백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흑백의 조화는 강렬한 아름다움을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부조화는 강한 충돌을 야기한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 갈등과 계층 갈등의 표출은 그러한 흑백 충돌의 단면을 보여준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왜 발생할까? 오랫동안 물어왔지만, 잊힌 질문인 듯 우리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이미 알고 있지만 찾지 못한 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문제들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개의 경우 그 문제들은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 '민감과 공감'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이의 기쁨과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고(민감), 그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는(공감) 세상은 어떠할까? 수많은 디자인 결과물들은 이러한 민감과 공감을 통해 발견된 단서에서 시작된다.

맨 오른쪽이 시장에서 판매되던 일반적인 상품이고 이 제품의 손잡이 등을 개선하여 맨 왼쪽의 제품이 개발되었다.
맨 오른쪽이 시장에서 판매되던 일반적인 상품이고 이 제품의 손잡이 등을 개선하여 맨 왼쪽의 제품이 개발되었다.

미국 주방용품 판매 1위, 옥소(OXO)의 굿그립(Good Grips) 시리즈의 시작 또한 그러했다. 평생 주방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해 온 샘 파버(Sam Farber)는 어느 날 감자깎기 칼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아내를 발견했다. 그의 아내는 손목 관절염이 심해져서 금속 재질의 가늘고 좁은 감자 깎는 칼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그는 스마트디자인과 협력해, 1989년 '굿그립' 시리즈의 첫 히트 상품인 감자칼을 만들었다. 철판을 잘라 만든 좁고 긴 손잡이 대신 큼직한 고무 손잡이에 가는 홈을 내어 편하게 잡을 수 있게 하고,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힘을 덜 들이고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옥소는 일반 제품보다 4배 비싼 가격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매년 50%의 매출 성장을 이루고, 세계 30여 개국에 진출, 세계적 주방용품 브랜드가 되었다.

옥소가 20년의 짧은 시간에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에 대한 따뜻한 마음에 있다. 스마트디자인의 대표 톰 데어(Tom Dair)는 "디자인은 '물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이다"(design is about people, not things)라고 했다. 사람을 향해야 하는 것이 어찌 디자인뿐일까! 사람의 사람을 향한 마음,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꽃보다 아름답지 않은 것 같다. 노랫말처럼, 이 모든 외로움과 어려움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그대들이 있는 세상,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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