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 전쟁 등 인류를 위협하는 재난들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지금의 시대에 전 세계를 이처럼 혼돈으로 빠뜨릴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예상치 못한 재난들을 극복해가는 것 또한 인류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호환마마'라는 말이 공포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때는 88올림픽의 마스코트로 등장했고, 지금도 동물원의 최고 인기 동물로서 그 친근감과 함께 위엄을 보이고 있는 동물이지만, 조선시대에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호환'(虎患)은 호랑이로 인해 사람들이 희생되거나 다치는 것을 말하는 용어로, 호환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기록에서도 나온다.
고려시대 문신 최루백은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자, 호랑이를 추적하였다. 최루백은 도끼로 호랑이를 죽이고, 배를 갈라 아버지의 뼈와 살을 꺼내고 호랑이의 고기는 항아리에 담아 시내 가운데 묻어두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쇄미록' 등 조선시대 기록 역시 호환의 피해 상황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태종실록'에는 "경상도에 호랑이가 많아, 지난해 겨울부터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이 기백 명입니다. 연해 군현(沿海郡縣)이 더욱 많아 사람들이 길을 잘 갈 수 없사온데, 하물며 밭을 갈고 김을 맬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여 백성들이 호환의 피해를 호소한 기록을 볼 수가 있다.
"의주에 거주하던 최산석은 10세의 어린아이로 그 아비 최천동과 산으로 갈 때 큰 범이 으르렁거리며 내달아 아비를 잡아채어 가자 최산석이 낫을 가지고 범의 등을 마구 치며 고성으로 구원을 청하였다.… 최산석은 오른쪽 손으로는 그 아비를 잡고 왼쪽 손으로는 낫을 잡고 울기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며 온갖 방법으로 범을 막았다.… 동행했던 사람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오니, 최천동이 죽게 되어 쓰러져 누워 있었다. 최산석이 간 곳을 물으니 '범에게 잡혀 갔다'고 했다.… 또 범 있는 곳에 가서 자취를 살펴보았더니, 범이 최산석을 잡아가서 몸뚱이를 다 먹고 두골(頭骨)만 남겨 놓았다"는 '명종실록'의 기록에서는 호환의 피해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호환이 심하여 민가는 물론이고 궁궐에까지 호랑이가 들어와 문제가 된 적도 많았다. 조선 후기에는 창덕궁 후원의 숲속에 암범이 새끼를 쳤다는 말이 나돌아 장수들이 문책을 당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의 피란 상황을 기록한 오희문의 '쇄미록'에도, "지난 밤중에 이 현 관아의 계집 종이 호랑이에게 물려가서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 소리가 몹시 간절했으나,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서 나가 보지 않았다. 물고 갈 때 관아의 뒤를 지나가서 사람들이 모두 들었는데도 끝내 구하지 못하여 굶주린 호랑이의 배 속을 채워 주었다. 불쌍하다. 요새 고약한 호랑이가 성행하여 문과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오기도 한단다. 몹시 걱정스럽다"고 하여, 호환으로 매우 힘들어하던 당시인들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포악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므로 비록 평원(平原)과 광야(廣野), 마을과 잇닿아 있는 곳이라도 사람이 감히 혼자 다니지 못하였다"는 '숙종실록'의 기록에서는 호환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출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조정에서는 호랑이 포획을 위한 기계나 함정 설치를 독려했고, 호랑이를 잡는 특수부대인 착호갑사(捉虎甲士)를 두었다. 조선의 헌법인 '경국대전'에는 활과 창에 능한 착호갑사 440명을 편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호랑이 두 마리를 잡은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부 시험을 면제해 준 것에서도 호랑이에 대한 조정의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해쳐 호환의 주범이었던 호랑이였지만, 한편으로는 친근함과 경외심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까치와 호랑이'와 같은 민화나 전래 동화, 각종 장신구, 관복 등에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이제 호환은 먼 옛날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19가 과거에서만 존재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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