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대구다. 이번엔 이용수 할머니다. 대구와 연결될 게 없는 거 같은데도 엮였다. 정의기억연대 및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관련 의혹을 제기한 기자회견 이후부터다.
대구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본질, 핵심은 흐려지고 진영, 이념 싸움으로 변질된다. 대구 비하 발언 등 비난과 비방이 쏟아진다. 그런데 주로 온라인상이라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다. 일일이 맞대응할 수도 없고, 대구 기질상 맞설 전투력도 약하다. 늘 그렇듯 '대구놀이'가 시작되면 게임은 끝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위안부 할머니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용수 할머니가 대구에 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가차 없이 대구 프레임이 씌워졌다. "어쩐지 기자회견을 대구에서 하더라" "참 대구스럽다" "대구가 대구했다" "대구 할매" 등 지역 비하·혐오 발언이 쏟아졌다. 할머니가 사는 곳이 대구고, 기자회견을 대구에서 했을 뿐인데 말이다. 대구 역시 어김없이 훼손됐다.
이 할머니는 힘이 없는 국가 탓에 꽃다운 나이에 일본제국주의의 군홧발에 짓밟힌 우리의 자화상이자 자존심이다. 청춘은 도륙당했고, 평생 치욕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유는 하나. 조국이 지켜주지 못해서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났지만 지금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일본도 아닌 이 땅의 아들 딸, 손자 손녀 같은 이들로부터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조롱을 당했지만 할머니 개인이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다 지역 프레임까지 더해졌다.
일제강점기 때 할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던 그 국가는 이번에도 힘이 없었다. 한 달 동안 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 할 만한데도 침묵했다. 지난달 7일 이용수 할머니의 1차 기자회견 후 할머니에 대한 비방이 시작된 뒤 한 달 만인 지난 8일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다"라고 했을 뿐이다.
이 할머니가 대구에 사신다는 이유로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단연코 없다. 대구 또한 마찬가지다. 힘없는 나라 탓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도 위축되지 않고 평생을 위안부 활동가로 당당하게 살아오신 분이 대구에 계신 것은 자랑할 일이다. 대구 역시 국채보상운동, 독립운동 등 항일투쟁에 앞장선 자랑스러운 도시로 이 할머니에게 힘이 되는 곳이지 비아냥의 대상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구 시민은 코로나는 물론 '대구 코로나'라는 조롱과도 싸워야 했다. 특정 종교로 인한 감염 확산인데도 욕은 대구가 먹어야 했다. 그러나 대구 시민들은 화살을 그들에게 돌리지 않았다. 그냥 맞았다. 지난 총선 직후엔 졸지에 일본의 한 도시가 될 뻔도 했다. 총선 결과를 두고 '독립해 일본 가라'는 말도 안 되는 막말까지 들었다. 어느 지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사고인데도 대구에서만 터지면 '고담'이 됐다.
과도한 인신공격과 비방을 견디다 못한 할머니 측은 사실과 다른 도 넘은 비난에 대해선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대구에 대한 근거 없는 명예훼손과 비방이 계속된다면 대구도 지역의 이름으로 집단 명예훼손 소송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대구 비방에는 정치적 이유, 현대사적 이유, 기질적 이유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더 이상도 아니다. '대구놀이', 이젠 그만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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