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의 슬로건은 '아름답고 강한 일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 제국'을 지향하고 있는 '일본회의'라는 보수 세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들에게 파렴치한 전쟁범죄로 남아 있는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삭제 대상이며, 제국의 기반이었던 한국의 실존은 무시되어야 한다.
2014년 아베 내각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1993년의 고노 담화가 발표된 경위를 검증하고, 담화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동시에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증폭시킨 주범으로 아사히신문을 지목했다. 아사히신문은 보수 인사들로 구성된 제3자위원회를 통해 과거 20년 이상의 위안부 관련 기사를 검증받았다. 제3자위원회 보고서는 "일본이 미국에서 홍보 활동을 할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위안부 문제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일본군이 집단적으로 많은 (한국) 여성을 납치하여 위안부로 삼았다는 이미지가 정착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또 보고서는 과거 20년간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10개 신문에 보도된 관련 기사를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관련 기사가 국제적으로 미친 영향은 한정적이며, 오히려 위안부 문제에 관한 외국 언론의 보도에는 아베 총리의 발언과 행동이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언행이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고 있다는 역설적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 및 유럽에서의 위안부 관련 보도는 한·일 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담론으로 취급되고 있고, 위안부(comfort women)를 성노예(sex slave)로 설명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려는 아베 정권의 시도는 불에 기름을 끼얹을 뿐 효과적이지 않다고 조언했다. 고노 담화와 아사히신문 검증의 연장선에서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베가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不可逆)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이 '합의'는 국내외의 비난과 함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아베의 역설은 또 있다. 아베는 작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대해 반도체의 핵심 소재 공급을 금지(규제)했다. 거기에는 경제적 타격을 가해 한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외려 한국 기업은 국산화 등으로 일본 의존도를 낮추었고, 일본 기업이 더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도치 않게 아베가 한국을 도운 꼴이다.
아베의 진짜 역설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 9월에 개최 예정인 G7정상회의에 한국, 러시아, 호주, 인도를 초청한다고 밝혔다. G7이 현재의 국제 정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제 정세 운운하면서 그 주역격인 중국을 제외하고 러시아를 포함시킴으로써 트럼트는 중국 견제 의도를 드러냈다. 그의 구상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재선을 앞둔 선거용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거부 반응이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으로 G7에서 쫓겨난 전례가 있어 프랑스, 독일, 영국은 러시아의 G7 가입에 반대한다. 일본도 G7의 확대 개편에 반대한다. 아시아 참가국이 늘어 일본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참가가 못마땅하다는 이야기이다. 아베가 그토록 무시하고 싶은 한국과 어깨를 견줘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면서 아베가 추구하는 '일본 제국'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의 부상으로 일본이 아시아 패권국의 지위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아베는 과거의 그것에 매달리고 있다. '영광'의 재현이라는 환상을 좇는 것이 국내 보수 세력들의 카타르시스 해소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특히 한·일 관계에서는 역설적 효과만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역설은 대상성을 상실한 자기 절대화에 빠질 때 발생한다. 논리가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한다. 아베가 지향하는 아름다고 강한 일본은 국내 정치용 수사였으며, 수명도 다한 것 같다. 한·일 관계에 대해 존재론적 인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성환(계명대교 교수 일본학전공, 국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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