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현충일에 읽은 글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멀리 있는 당신에게 일자(一字) 서신(書信)을 통(通)하오니 희심견득(喜心見得)하여 객지(客地)에 있는 졸부(拙夫)를 상봉(相逢)한 듯이 바다주소서… 아무쪼록 몸 성히 잘 잇긔를 부탁합니다… 객지에 있는 졸부가 귀가(歸家)할 때까지 신체건강(身體健康)하여 주기 바란다…."

1953년 어느 날, '객지에 있는 졸부'가 '멀리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영수 엄마 앞'으로 보낸 편지를 아내는 8월 19일에 받았다. 1953년 4월 12일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해, '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남편의 편지를 '영수 엄마'는 고이 간직하다 1998년 남편 곁으로 떠나면서 며느리에게 가보(家寶)로 물려줬고 이는 세상에 알려졌다.

낡은 누런 종이에 한글과 한자를 섞어 '새삼스러이 백운(白雲)으로 하여금 동행(同行)하여 멀리 있는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는 남편은 '매일 고지에서 백병전(白兵戰)으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있으니 안심(安心)하소서'라며 아내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영수, 민수'라는 두 자녀로 보이는 이름에 동그라미까지 친 '졸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주인공 김종섭 하사 같은 '객지 졸부'의 가슴 아린 사연의 편지와 이야기가 어디 이뿐일까. 남과 북으로 허리 잘린 채 다시 맞은 6·25전쟁 70주년 현충일, 6일 오전 10시 추념의 소리는 도심 소음 속에서도 1분간 울려 퍼졌다. 조기(弔旗)를 단 집은 비록 띄엄띄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날을 잊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증거니 다행이랄까.

이런 현충일에 읽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절히 읊은 경북 성주 출신 김태수 시인의 시집 '외가 가는 길, 홀아비바람꽃'은 우연인가, 인연인가. 전쟁 직전 북쪽 평안북도 희천에서 만난 총각의 고향, 성주로 시집가는 딸의 신행(新行)을 따라왔다가 결국 6·25로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시인 외할머니의 애절한 망향가(望鄕歌)가 애달프다.

가보가 된 김종섭 하사의 편지와 남북 이산의 아픔과 함께 망향의 슬픔을 담은 시집 한 권으로 70주년을 맞은 6·25를 다시 생각한다. 현충일 조기를 내리는 늦은 시간, 어둠 속에 사라진 낮이 다시 밝은 새 아침이 되듯 잘린 허리는 다시 하나로 이어지겠지. 김 시인의 절규처럼 '압록강이건 두만강을 건널' 때도 오리라.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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