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자기들 보상금 잘 받게 됐으니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재건축 부지에 있던 한 여관에 장기투숙 중이던 쪽방촌 주민들이 갑작스레 거리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건물주 측이 소위 '알박기'를 위해 세입자들에게 사정을 하며 계속 붙잡아 놓다가 막상 재건축 조합과 보상금을 합의하자 안면몰수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10일 대구 동구 신암4동 뉴타운 주택재건축 정비사업 부지의 D여관에서 만난 이곳 세입자들은 4일 건물주 측으로부터 "곧 여관을 철거하니 25일까지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3주 만에 다른 집을 구해 나갈 방법이 없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여관 세입자 19명 중 16명이 월 7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만 생계를 이어가는 기초생활수급자인 탓이다.
2년간 D여관에서 거주 중인 A(70) 씨는 "건물주 측은 지난달까지도 방세를 받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니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며 "지금 수중에 한 푼도 없는데 이 땡볕에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월세보증금이라도 마련할 시간을 줘야할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세입자들이 가장 분통터지는 것은 합의 뒤 급변한 건물주 측의 태도다. 건물주 측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세입자들에게 "보상금 합의가 끝날 때까지만 여관에서 지내준다면 나가는 날 이사비 명목으로 돈을 챙겨주겠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보상금 합의가 끝나자 이사비에 대한 건 일언반구도 없이 '축객령'만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곳 세입자 권혁찬(50) 씨는 "올해 2월에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건물주 측이 만류하는 바람에 취소했다"며 "여관에 세입자가 살고 있으면 보상금 협상에 유리하니 붙잡다가 협상 뒤에 찬밥 취급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건물주 측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D여관 관리인은 "보상금 분쟁이 2년 이상 길어지다 보니 우리도 지치고 조합 측도 사업 지연으로 손해가 커 합의 중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철거를 하기로 결정했다"며 "보상금도 우리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일전에 약속한 이사비는 지원해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알박기에 세입자들을 이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재건축 조합 측은 "세입자들의 처우와 보상에 관한 것은 건물주 측에서 전적으로 책임지기로 했다"며 "세입자에 대해선 '할 말 없다'"고 했다.
현행법 상 재개발 세입자와 달리 재건축 세입자는 주거이전비, 이사비 등의 손실보상 받을 법적 근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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