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좋아 나무에 빠진 저자는 20년 넘게 나무와 더불어 살아왔다. 불안한 젊은 날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해준 나무가 좋아 그 벗이 됐고 '나무인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나무와의 인연(樹緣)'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으로 생각한다.
계명대 사학과 교수이자 나무 인문학자인 저자는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나무들이 안고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고통을 이겨냈으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이 책에는 모두 31그루의 나무가 등장한다. 일본이 원산이라고 오해를 받는 왕벚나무, '물' 때문에 사람들에게 수난을 당하는 고로쇠나무, 벼락을 맞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 팽나무, 수시로 가지가 잘려나가는 음나무, 송충이들의 공격을 받아 남편을 잃은 소나무 등 저자가 가깝게 또는 멀리서 관찰하고 소통한 인생의 친구 같은 나무들이다.
나무들의 나이와 신분은 천차만별이다. 30살의 뽕나무, 1천살의 산수유, 천연기념물로 매년 제사상를 받는 느티나무, 버림과 외면을 당하다가 홀로 허름한 농가를 지키는 밤나무도 있다.
저자는 '나무'가 되어 그들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순간을 상상하며, 자신의 상처와 세상의 아픔을 떠올린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무의 상처 이야기인 동시에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우리네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무도 사람처럼 온갖 고통을 겪고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상처를 대하는 자세나 치유하는 방식은 사람과 다르다.
저자가 종종 찾아가는 친구 중 하나인 음나무는 경남 창원에 있다. 700살의 나이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벼랑 끝의 삶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는 수시로 수난을 당하며 평생 상처뿐인 생을 살았다. 사람들이 맛을 좋게 해준다며 가지를 잘라 음식에 넣거나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며 집 안에 걸어두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음나무는 심한 몸살을 앓았지만 삶을 한탄하거나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라고 여기며 오늘의 삶을 사는 데 주력했다. 그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약간의 배려다.
"가지를 자를 때는 줄기에 가깝게 잘라야 한다. 그래야 상처를 치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지금도 '나무인간'에겐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무와의 오랜 인연을 통해 상처를 다스리는 법을 깨닫고, 상처를 살아가는 힘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깨달음의 기록이다.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초유의 고통에 빠져 있을 때에도 나무들은 자신의 뿌리를 튼튼히 하는 일상에 묵묵히 충실하다. 그렇게 꽃을 피우고 잎과 열매를 만들어간다. 상처를 다스리는 가운데 다른 생명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해준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기도 한다. 자연의 치유자인 나무의 삶은 그래서 아름답고 위대하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이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72쪽, 1만5천원.

▷강판권은
계명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동 대학원에서 중국 청말 정치외교사로 석사학위를,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청대 농업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무를 인문학으로 연구하는 '수학(樹學)', 역사를 생태로 연구하는 '생태사학(生態史學)'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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