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타자에게 눈감은 우리들

눈먼 자들의 도시(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2010)

도시 풍경_배태만
도시 풍경_배태만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의 한계성을 들추어내는 소설을 만났다. 바로 포르투갈 출신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포르투갈 원제인 'Ensaio sobre a cegueira'를 해석하면 '눈멂에 관한 수필'이라는 뜻이다.

저자인 주제 사라마구는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며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수도원의 비망록'이다.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 작가로 주목받고 1998년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는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인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저자의 문체는 쉼표와 마침표 이외의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화와 대화 사이, 대화와 해설 사이 등에서 줄바꿈을 하지 않고, 장마다 소제목이나 일련번호 등의 표시도 없어 형식에 있어서도 기존의 다른 소설과 차이가 난다.

이 소설은 '우유의 바다'라고 표현한 비현실적 백색 실명이 일어나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원인 모를 백색 실명이 급속히 확산되자 보건 당국은 실명자와 보균자를 별도로 마련한 공간에 강제 격리하기로 한다. 백색 실명 환자를 최초로 진료한 안과의사도 곧이어 실명자로 분류되어 격리된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비록 눈이 멀지 않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숨긴 채 남편과 함께 격리 공간으로 들어간다. 격리된 실명자들은 안과의사의 아내가 보여준 희생과 노력의 영향으로 동물적 본성과 야만적 폭력이 난무하는 가혹한 환경을 꿋꿋이 헤쳐 나간다. 안과의사의 아내는 처음에는 눈먼 자신의 남편을 돌보기만 하다가 격리된 공간에서 자신이 돌봐야 할 대상의 범위를 점차 넓혀 나간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우월을 드러내지 않고 현장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지식인의 바람직한 모습으로 느껴진다.

저자는 안과의사의 아내를 통해서 진실과 윤리에 눈먼 기존 관념을 지적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461쪽)

위의 대사처럼 타인의 눈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눈먼 사람들은 자신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다가 함께 있는 다른 눈먼 사람들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철학자 미셸 푸코가 '개인의 윤리란 타인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내재화한 결과'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느닷없고 당혹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이기심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의 고통에 시선을 돌리는 데는 문학적 상상력이 도움이 된다. 이것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도록 이끌고 개별적인 나 자신을 사회적으로 점차 확장하도록 만든다. 소설 속 상황과 비슷하게 요즘 하루하루가 원치 않는 격리로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문학적 상상력으로 이러한 시간을 채워가며 힘든 나와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길 나 스스로에게 우선 권한다.

배태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