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재정은 걱정하며 증세는 싫다는 민심

민심은 이율배반적인 경우가 많다. 포퓰리즘이라 비난하면서도 정치인들이 뿌리는 돈 약속을 마다하지 않는다. 선거철마다 포퓰리즘 공약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다.

최근 국민기본소득제에 대한 국민 여론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길리서치가 '개인의 재산이나 소득, 취업 여부 및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하는 국민기본소득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찬성이 51.2%에 달했다.

이렇듯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면서도 내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더 낼 생각은 없는 것 또한 민심이다. 세금을 늘리는 증세에 대해서는 반대가 58.3%였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면서도 증세에 반대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재정에 대해서는 69%가 '우려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국가 재정을 '우려'하면서도 국민기본소득제 도입에 '찬성'하고, 그 해결책으로 불가피한 증세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그렇다고 민심의 이율배반성을 탓할 수 없다. 역설적 민심을 다독이고 해결하며 국가가 장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가 민심을 거스르며까지 공공기관 개혁이나 연금 개혁 등 정책을 밀어붙였던 것은 새겨야 할 일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던 40% 밑에서 지켜온 것 역시 자랑스러운 전통이지 경제위기라며 헌신짝처럼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국민들이 나라 재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조씩 흑자를 기록하던 예산안 대비 세수가 연속 적자로 돌아섰다. 올 한 해 찍어 내야 할 적자 국채가 97조원에 달한다. 나라의 자랑거리던 국가재정건전성이란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 이 추세라면 올해 국채 비율은 43.5%까지 치솟고 2022년이면 국가채무가 1천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나라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자료다. 그러니 국민이 곳간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나라가 됐다.

이런 때 국민기본소득 논의가 나라를 흔들고 있다. 적자 국채를 무한정 감당할 수 없고, 증세를 말하지 않는다면 국민기본소득 도입은 불가능하다. 이를 말하지 않는 정치꾼들의 무분별한 '희망 고문'에 국민과 관료들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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