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석동 대구시설관리公 어머니 서두래 씨

가난 굴레 속 '너는 할 수 있다' 긍정 메시지 인생 전환점으로

불러도 불러도 그리운 그 이름 어머니(왼쪽)가 손자,며느리와 함께 한 사진.
불러도 불러도 그리운 그 이름 어머니(왼쪽)가 손자,며느리와 함께 한 사진.

벌써 7년 세월 참 빠르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최악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셨던 어머니 서두래씨. 대단히 풍족하거나 크게 성공한 삶은 아니더라도 오늘날의 여유로운 삶을 일궈온 인생의 길잡이요, 등대같은 역할을 하셨던 어머니께서 영면하신지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세상 모든 이들이 '어머니' 라고 부르면 한 가닥 그리움이나 가슴 짠한 추억이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매년 5월이 되면 어린이날에 영면하신 어머니가 더욱 큰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선비 집안의 막내 딸로 태어나 방년 열입곱 어린 나이에 그 흔한 논 한마지기 없었던 가난한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다.

시집 온 지 26년, 필자의 나이 다섯 살 되던 해에 가난과 아직 설익은 6남매라는 멍에를 어머니에게 남겨둔 채 아버님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셨다. 초등학교 문 앞에는 가보지도 않았지만 뛰어난 기억력과 판단력으로 시골 동네의 시시비비에 대한 재판관 역할을 하면서 혹여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손가락질 받지 않게 하려고 자식 훈육과 밥상머리 교육을 철저하게 하셨다.

손녀의 돌잔치에서
손녀의 돌잔치에서

쌀 한 톨 없는 보릿고개 시절에 혹여 집안에 손님이 올라치면 몰래 감춰둔 쌀 한 줌을 꽁보리밥에 섞어 손님에게 대접하고, 손님이 부담스러워 할까 봐 어린 아들에게는 손님 밥숟가락을 절대 처다보지 못하게 하셨다.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결석도 많았고,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가지 못했던 시절, 어머니의 기억력을 제대로 물려받은 덕분에 한 학년이 3학급 210명 정도의 작은 시골학교에서 전교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었으나, 가난이라는 굴레를 극복할 수 없었다.

성장기에 가장 예민한 나이 16살, 중학교 3년 중퇴를 하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철공소 생활을 시작하였다. 없는 가정 형편에 가난은 달고 살았고,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암울한 환경속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이 되게 한 어머님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너는 할 수 있다' 어디가서 물어보니 '너는 어디가서 무엇을 하던 세상의 빛이 되는 삶을 살 것이다'라는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셨던 것이다.

철공소 생활과 주경야독, 공무원 입문, 39년의 공직생활과 현재의 시설공단 상머슴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인생 여정에는 따뜻하면서도 강했던 어머님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던 것이다.

그저께 한 갑자 인생이 지나 새로운 한 갑자 인생을 시작했다. 필자의 오늘이 있기까지 칠흙같은 어둠을 밝히는 삶의 지혜와 열정의 에너지를 주시던 어머니를 그리면서 그 유지를 받들어 다음 한 갑자는 이렇게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세상 모든 이에게 태양처럼 빛을 발하는 인생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에게 만이라도 빛이 되고, 길이 되는 등불같은 인생을 살겠노'라고... 이생의 고달프고 힘들었던 삶의 멍에는 훌훌 던져버리시고 어머님이 계시는 그 곳에서는 늘 웃음 가득한 일상이시기를.... 어머님을 그리며 불효자 김석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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