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보수 정당과 기본소득 논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본소득·물질적 자유' 등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모두에 지푸라기 던지는 것보다

물에 빠진 일부에 동아줄 주는 게

더 좋은 정책임을 납득시켜야 해

김종인 비대위·보수 정당이 할 일

4월 20일 자 본란 칼럼에서 나는 보수 정당이 재난구호금, 기본소득 등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단순히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만 한다면 과거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동의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그 배경은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재난구호금 등 돈 뿌리기 정책을 이번 총선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는 사람이 많다.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정책에 대응하는 야당의 자세도 문제였다.

전가의 보도인 '재정건전성'을 들어 반대하다가 갑자기 '전 국민 50만원'으로 급선회하였다. 국민들은 반색하기보다 공약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총선 후 다음 대선 국면에서는 이전의 '복지 공약'과 차원이 다른 돈 선거가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기본소득 논란이 그 핵심이 될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기본소득 논의를 이해하고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채 수세적·방어적으로만 임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놓치기 십상이다. 정권은 물론 재정건전성도 물 건너간다는 말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취임 일성은 기본소득이었다. 대번에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이 나왔다.

진보 진영과 더 퍼주기 경쟁을 하는 한 집권층을 이길 수 없다는 비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지켜보고자 최종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다. 정말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기 위한 몸풀기라면 비판에 앞장설 생각이었다.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복지정책 및 경제정책에 대한 근본적 패러다임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본소득 논의의 출발점이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핀란드 등 실험적으로 시도한 경우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시행한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반면 효과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에 대해 냉정한 분석 대신 감성적 접근을 하는 경우이다. 기본소득을 외면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는 감성팔이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는 익숙한 모습이다. 재정 형편을 들어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같은 맥락이었다.

기본소득 등에 주목해야 한다는 나의 언급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도입에 찬성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반대만 해서는 백전백패라는 말이었다. 다행히(?) 정치권의 기본소득 논의가 가열될 즈음 김 위원장은 슬그머니 발을 뺐다. 현재 재정 상황으로 보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논의를 시작하자는 얘기였지 당장 도입하자는 게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곧이어 김 위원장은 전일 보육 제도, 대학 교육 개혁 등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하나같이 차기 대선은 물론 향후 우리 사회를 흔들 굵직한 사회적 이슈들이다. 최소한 진보 진영의 공세를 차단할 수 있는 행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수비만으로 득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본소득보다, 현재의 보육 정책보다, 정부·여당의 교육 개혁보다 더 나은 대안을 내놓는 데까지 가야 한다. 단순히 대선을 염두에 둔 선거용이라면 금방 밑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이슈를 선점하는 전술적 차원에 그칠 경우 원희룡 제주지사의 말처럼 '진보의 아류'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기본소득 논의를 중심에 놓고 볼 때 김 위원장의 행보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 정당과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최종 판단은 유보하려 한다. 정책적 유연성과 정치적 정체성을 얼마나 잘 조화시키는지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보수라는 말을 쓰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관건은 보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설득력 있는 정책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를 던져서는 안 된다.

튼튼한 밧줄을 던져야 마땅하다. 모든 사람에게 지푸라기를 나눠 주느라 밧줄을 만들 수 없다면 온당한 일이겠는가.

모두에게 던져 주는 지푸라기보다 물에 빠진 일부에게 든든한 동아줄을 만들어 주는 게 더 좋은 정책임을 납득시켜야 한다. 기본소득을 예로 들면 그게 보수 정당과 김종인 비대위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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