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뵐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듯 '위안부의 역사' 그 자체인 할머니들, 그분들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참혹한 삶을 용기 있게 증언한 분들이자 인간의 존엄을 향해 누구보다 용기 있는 걸음을 걸어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한 발 한 발 아픔으로 내디딘 귀한 길에 '돈'이 얽혀 세상의 가십거리가 되니, 할머니의 눈물이 더욱 안타깝다.
내가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와 김분선 할머니를 처음 뵌 것은 2004년이었다. 탈북자들의 해상 탈출을 취재하다 중국에서 감옥살이를 한 후 1년 2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 한동안은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2005년 김분선 할머니의 장례식은 나에게 카메라를 다시 잡게 만들었다. 그렇게 할머니들께서 들려주신 진실의 기억은 내내 내 마음 한곳에 자리하고 있다가 2014년 대구사진비엔날레의 특별전 기획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필자가 기획한 '전쟁 속의 여성 Women in War'는 전 세계 여성 종군기자 11명이 기록한 참혹한 '전쟁의 기억'과 죽음보다 힘겨운 시간을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실의 기억'으로 구성되었고 한국, 일본, 미국, 대만, 중국의 사진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때 만난 일본의 사진가가 이토 다카시였다. 가해국인 일본의 국민이자 전 세계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기록한 사진가, 이토 다카시는 일본이 그토록 감추고 싶은 진실을 세상에 알려온 시대의 증언자였다. 그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해 한국, 북한, 대만, 필리핀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과 사진을 책으로 남겼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본 지도를 벚꽃이 아닌 나팔꽃으로 수놓았다는 이유로 일본 형사에게 연행된 심미자 할머니. 혹독한 전기고문 후 정신을 차려 보니 그곳은 후쿠오카의 육군부대였고 그녀는 위안부가 되었다. 제복을 입은 일본인들에게 다짜고짜 머리채를 휘어잡혀 일본으로 끌려간 또 다른 소녀 역시 위안부가 되었다. 한밤중 집으로 쳐들어온 일본인은 말리는 아버지를 칼로 베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간 소녀 역시 그렇게 위안부가 되었다. 순결했던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소녀들, 일본군들은 거부하는 소녀들을 나무에 매달아 칼로 목을 내리쳤다. 뻔히 죽을 것을 알지만 고향까지 헤엄쳐 돌아가겠다며 검푸른 바다로 몸을 던진 수많은 소녀들….
수많은 사진전을 기획했지만 돌아보면 그 전시를 준비할 때만큼 마음이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인이지만 우리 역시 너무도 몰랐던 역사의 진실들, 내가 살아있는 증거라 외친 할머니들의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해 준 사진가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죽으면 천국에 가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는 할머니들의 눈물은 우리가 끝까지 알아야 할 '진실의 기억'이자 일말의 숨김도 없이 미래에 고스란히 새겨져야 할 역사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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