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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뒷담] 달서구가 달성습지 개명? 그럼 서구 달서천은?

2004년 달성습지 전경. 매일신문DB
2004년 달성습지 전경. 매일신문DB

대구에서 최근 '지명' 논쟁이 벌어졌다.

'달성습지'를 두고 대구의 인접한 두 지자체 기초의회인 달서구의회와 달성군의회가 공방을 펼치고 있다.

▶지난 8일 나온 달서구의회 정창근 의원의 주장은 이렇다. 과반 이상(60%) 면적이 달서구에 포함된 달성습지가 달성군에 속한 것으로 인식돼 주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것. 그러니 새 이름을 공모해야 하고, 따라서 대구시에 명칭 변경을 건의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15일 달성군의회 김은영 의원이 반박에 나섰다. 우선 면적 계산부터 틀렸다고 주장했다. 달성습지 습지보호구역 총 17만8천43㎡ 가운데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가 17만2천457㎡로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정작 달서구 면적(5천586㎡)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김은영 의원은 '달성'이라는 지명이 현 달성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며 달성습지 명칭을 바꾸면 대구 중구에 있는 달성공원도 개명해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실제로 달성공원 부지에 삼국시대 때 만들어졌던 달성토성 이래로 대구의 옛 지명을 살펴보면 달성이 꽤 나온다. 대구시 기관과 행사 이름, 대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 유명 막창집 브랜드 등에 두루 쓰여 익숙한 '달구벌'만큼 대구와 꽤 연관된 키워드이다.

2020년 달성습지 수로형 습지 복원공사 현장 전경. 매일신문DB
2020년 달성습지 수로형 습지 복원공사 현장 전경. 매일신문DB

▶다시 달성습지 얘기로 돌아가보면 이렇다.

대구시가 2007년 대구의 주요 하천인 낙동강과 금호강, 진천천, 대명천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광활한 하천습지를 '습지 및 야생동·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데 따르면, 또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이곳 습지의 이름은 '대구달성 하천습지'이다. 다만 달서구와 달성군 등 2개 지자체를 소재지로 하고 있음도 자료에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다른 여러 자료를 살펴봐도 달서구와 달성군이 늘 함께 언급된다.

그렇다면, 이미 '판'이 벌어진 만큼,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달성'이라는 단어가 굳어졌으니 그대로 두는 게 나을 수 있겠다. 긁어 부스럼.

달서구와 달성군에 함께 배치돼 있으니 '달서달성습지' 또는 '달성달서습지' 식으로 표기 역시 함께하는 합의안 역시 가능하다. 포함되는 면적이 누가 더 많으냐를 따져 달서가 앞에 올 지 달성이 앞에 올 지를 결정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괜시리 글자 수만 늘어나는 기계적 합의안보다는, 결국 되돌아 가 달성이라는 단어를 계속 쓰거나 아니면 대구 전체를 포괄하는 지명을 새로 도입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달성습지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만든 것이라서, 그 영역을 대구 밖까지도 정할 수 있다. 계산하기에 따라 기존 달서구와 달성군에 더해 경북 고령군 다산면까지도 영역 안에 들어간다. 더구나 습지란 게 시간이 흐르며 축소될 수도 있고 확대될 수도 있어서, 먼 훗날 또 어떤 지자체가 '습지 보유(또는 가장 많은 면적 차지) 지자체'가 될 지 알 수 없다. 그럴 경우 그때그때 습지의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걸까?

2013년 대명유수지 새끼 맹꽁이들. 매일신문DB
2013년 대명유수지 새끼 맹꽁이들. 매일신문DB

▶아무튼, 어떤 경우가 나오든, 그게 향후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지금이야 아무런 얘기가 나오지 않는 지명이라도, 만일 이번처럼 개명하자는 주장이 '툭'하고 튀어나온다면 말이다.

당장 달성습지 바로 인근 대명유수지와 대명천이 후보이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맹꽁이의 국내 최대 산란지로 유명한 대명유수지 및 인접 하천인 대명천은 달서구 대천동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 '대명'이라는 지명은 달서구 옆 남구에 1동부터 무려 11동까지 있는 대명동의 그 대명이다. 그럼에도 대명유수지와 대명천은 달서구 대천동에 있으니, 훗날 이름을 대천유수지와 대천천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달서천(파란 네모 안). 드러나 있는 전 구간이 대구 서구 내에서만 흐른다. 달서구와
달서천(파란 네모 안). 드러나 있는 전 구간이 대구 서구 내에서만 흐른다. 달서구와 '전혀' 상관이 없다. 네이버

▶대구 안에 흐르는 또 다른 하천을 살펴보자. 달서구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 달서천이라는 하천이 눈에 띈다.

어라? 잘 몰랐다. 달서천은 달서구가 아니라 서구 안에서 비산동 남쪽 및 이현동·평리동 북쪽의 경계를 따라 흐른다.

달성습지가 달서구와 달성군에 함께 걸쳐 있어 현재 논란이 나오는 것과 달리, 달서천은 모두 서구 안에 있다.(일부 구간은 북구 금호동과 겹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달서천이 금호동 소재로 보는 금호강으로 흘러서다. 또한 과거 중구까지 흘렀던 구간을 제외하고 현재 드러난 구간만 따지면, 실질적으로는 서구만의 하천)

그러니 만일 느닷없이 서구의회가 달서구의회에 "대부분 면적이 서구에 포함된 달서천이 달서구에 속한 것으로 인식돼 주민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개명을 주장한다면?

▶사실 달서천은 일제강점기에 지금은 사라진 대구천 대부분이 매립되면서 파생된 하천에 붙은 이름이다. 그 소재지가 나중에 보니 서구가 돼 있을 뿐이다.

달서구는 1988년 서구를 비롯해 대구의 일부 지역을 떼어다 신설한 지자체이다. 달서천이라는 이름이 생기고 훨씬 후에, 달서천과는 상관 없이 붙은 지명이다.

달서천과 비슷한 사례가 좀 더 있다. 달서중학교와 달서고등학교가 달성군에 있다. 달서중은 1967년, 달서고는 1974년 설립됐는데 둘 다 달서구가 생기기도 전이다. 달서로는 서구 안에서 시작해 끝이 난다.(내당동~원대동) 달서로 역시 달서구가 생기기도 전인 1982년 이름이 붙었다.

명칭이 중요한 걸까? 잘 가꾸는 게 중요한 걸까? 2011년 달성습지 억새밭 가을풍경. 매일신문DB
"달서중, 달서고. 니가 왜 달성군에서 나와?" "나 원래 달성군에 있었어... 너 태어나기 전부터..." 달서중·고 전경. 온라인 커뮤니티

그냥 달서구를 비롯해 서구와 달성군 등 대구의 서쪽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달서'(達西)라는 단어를 애용해왔다고 보면 된다. 서구 내 달서가 붙은 지명의 경우 서구가 과거 달성군 달서면에 속했던 영향도 있다. 참고로 대구에 달서는 있지만 달동, 달남, 달북은 없다.

즉, 달서 어쩌고 하는 지명은 달서구에만, 달성 어쩌고 하는 지명은 달성군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칙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서구에 있는 하천 이름이 달서천인 것도, 중구에 있는 공원 이름이 달성공원인 것도, 달서구 및 달성군과 대구 바깥 경북 고령군까지도 한데 모인 수계에 있는 습지 이름이 달성습지인 것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새들은 달성습지 명칭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 없이 환경만 좋으면 꼭 온다. 2013년 달성습지를 찾은 민물 가마우지. 매일신문DB
명칭이 중요한 걸까? 잘 가꾸는 게 중요한 걸까? 2011년 달성습지 억새밭 가을풍경. 매일신문DB
새들은 달성습지 명칭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 없이 환경만 좋으면 꼭 온다. 2017년 달성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매일신문DB
새들은 달성습지 명칭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 없이 환경만 좋으면 꼭 온다. 2013년 달성습지를 찾은 민물 가마우지. 매일신문DB
새들은 달성습지 명칭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 없이 환경만 좋으면 꼭 온다. 2017년 달성습지를 찾은 흑두루미. 매일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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