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와 '융합'이 미래 교육의 열쇠라고들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말하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잘 버무려 독창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창의 융합'이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창의 융합형 인재'라 불렸다.
'상상제작소'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해볼 수 있는 공간. 대구시교육청도 상상제작소를 구축하는 데 관심이 많다. 이 공간이 교과의 장벽을 넘어 융합 교육을 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 상상제작소 구축 시도와 이런 도전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상상제작소와 메이커 교육
메이커 교육(Maker education)은 디지털 도구 등 각종 기기를 활용해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확산한 메이커 운동이 시발점. 제작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 협업, 공유하면서 창의력을 키워나가는 게 이 교육의 목표다.
공동체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적극성, 참여 의지, 자발성, 문제 해결력, 공동체 의식 등이 메이커 교육의 기본 정신. 상상제작소는 다양한 공작 도구를 갖추고 학생들이 생각한 물건을 실제로 만드는 곳이다. 메이커 교육을 진행하기 좋은 곳이 상상제작소. 바늘과 실의 관계인 셈이다.
시교육청은 상상제작소 구축과 메이커 교육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융합적 사고 역량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올해 초 '상상제작소 구축 및 운영을 위한 업무 매뉴얼'을 발간, 보급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막상 메이커 교육을 하겠다고 마음 먹어도 실천에 옮기는 건 쉽지 않다. 그런 경우 도움을 주기 위해 펴낸 게 이 매뉴얼. 학교 내 상상제작소 구축 계획 단계부터 운영까지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자료를 꾸몄다는 게 시교육청 측의 설명이다.
담당교사의 업무 경감과 상상제작소에 기반한 메이커 교육의 활성화가 매뉴얼의 제작 의도. 매뉴얼에는 상상제작소 구축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부터 ▷예산 편성과 운영 계획 수립 ▷물품 구입과 여건 조성 ▷성과 관리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그외에도 ▷사업 추진 점검 체크리스트 ▷운영 안전 유의사항 ▷대구 메이커 스페이스 현황 등도 수록했다.
올해까지 96개 학교에 상상제작소를 구축하겠다는 게 시교육청의 계획이다. 이근식 시교육청 융합인재과 융합교육담당 장학관은 "현장 교사들이 상상제작소를 활용해 다양한 메이커 교육 사례들을 공유, 메이커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창의적으로 성장하고 미래를 배우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예방에도 상상제작소 활용
대구 대건고의 상상제작소는 지난해 문을 연 '대건 INNO-FAB'. 이대희 교장은 "이곳은 레이저커팅기를 비롯해 3D 프린터, 진공성형기, 레이저 각인기, 미싱기, 탁상드릴링 머신, 전동 드릴, 각도 절단기 등 다양한 디지털 도구와 공구를 갖췄다"고 소개했다.
학생들은 이 공간에서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구체화한다. 코딩 교육에 활용되는 마이크로비트를 이용해 조명을 만들어 보고, 버려진 종이박스로 조명을 만드는 정크 아트(Junk Art·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폐품·잡동사니 등을 활용한 예술)도 이곳에서 체험했다.
양연웅(2학년) 학생은 "평소 회로 설계에 자신이 없었는데 코딩을 배우고 제품도 만들면서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전형진(1학년) 학생은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운 게 의미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가시지 않은 탓에 학교마다 학생들의 안전 문제로 고심 중이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예방하는 데 상상제작소도 한몫하고 있다. 대건고와 대구고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칸막이를 제작해 활용 중이다.
코로나19 극복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곳은 이들만이 아니다. 서동중학교는 레이저 커터를 이용해 종이타올 보관함을 제작, 각 교실에 비치했다. 경명여고 교사 동아리는 학생들이 교육활동 중 사용할 수 있도록 면 마스크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경북여고 교직원들도 상상제작소 '백합공방'에서 급식실용 칸막이와 함께 쓸 부품들을 만들었다. 날카로운 칸막이 모서리를 감쌀 '코너 가드(보호대)', 칸막이를 고정할 '브래킷'이 필요했는데 적절한 크기의 기성품을 찾기 어렵자 자체 제작하기로 한 것이다.
제작한 시제품들은 급식실 탁자에 설치해보고 문제점을 보완했다. 남영목 교장은 "첨단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의 융합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우리 교육이 나가야 할 융합 교육의 본보기"라며 "백합공방을 수업 시간에 지속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학교들
창의적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고, 꿈과 끼를 키우며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 상상제작소다. 단순히 학교 환경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이같은 목적에 맞게 상상제작소를 운영하려면 구성원의 의지와 역량, 교육당국 등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각종 디지털 기기가 개발, 보급되면서 메이커 교육과 상상제작소 구축 사업에도 조금씩 탄력이 붙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학교에서의 활동이 좀 더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 하지만 변화의 바람은 이미 여러 학교에서 감지되고 있다.
교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학교도 여러 곳이다. 경명여고는 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올해 상상제작소 '다품 공방'을 열었다. 이곳은 3D 프린터와 재봉틀, 자수 머신 등을 구비했다. 교사들은 이곳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자체 연수를 운영 중이다. 친환경 면 마스크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탄생한 곳도 여기다.
대구고 교사들은 레이저 커터 활용 연수를 받았다. 이 기기의 특성과 사용법을 익혀 제품 설계와 디자인, 제품 제작과 사후 처리까지 전 과정을 직접 체험 중이다. 제대로 알아야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도원중은 모니터 받침대, 연필꽂이 등을 제작해 교직원들이 사용 중이다.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모습도 보인다. 상원중은 상상제작소를 구축한 인근 학교와 공동으로 달서구청이 지원하는 '2020 달서 주니어 SW 메이커 아카데미'를 준비하고 있다. 메이커 체험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재료를 사전에 택배로 보낸 뒤 온라인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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