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왜 흑인은 늘 비극의 주인공이여야 하나"…신작 'Da 5 블러드'

베트남 전쟁 통해 흑인 비운의 역사 다루고 이에 맞서 정의의 메시지 외치다

영화 'Da 5 블러드' 스틸컷
영화 'Da 5 블러드' 스틸컷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종 차별문제가 또 다시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주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이 문제를 드러낸 한 편의 영화가 전 세계에 공개됐다.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의 'Da 5 블러드'다. 1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 영화는 베트남전쟁을 끌어와 흑인들의 비운의 역사와 이에 맞서 정의를 외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풀어냈다.

이 영화의 설정은 다소 자극적(?)이다. 황금을 찾아 다시 베트남을 찾은 참전 용사들이 주인공이다. 노먼(채드윅 보스만) 분대는 전투 중 금괴를 발견한다. 베트콩에 맞서는 이들에게 지급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용병 자금이었던 것. 흑인 분대원들은 땅 속에 금괴를 묻고 돌아온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백발이 된 그들이 다시 베트남을 찾는다.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황금은 괄시받고 살아온 이들의 고통을 보듬어 주기에 충분한 보상이다.

이 정도의 플롯이라면 전쟁 중 황금을 찾기 위한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켈리의 영웅들'(1970)이나 '쓰리 킹즈'(1999)를 떠올리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2차 대전과 걸프전을 배경으로 무의미한 전쟁을 뒤로 하고, 황금을 쫓아 전쟁을 치른다는 통쾌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Da 5 블러드'의 감독은 스파이크 리다. 그는 30년 넘게 미국에서 흑인의 차별과 부조리 등을 영화로 만든 흑인 감독이다. '똑바로 살아라'(1989), '모베터 블루스'(1990), '정글 피버'(1991), '말콤 엑스'(1992) 등 수작을 만들었다.

2018년에는 미국 백인우월단체인 KKK단에 잠입한 흑인형사 이야기를 그린 '블랙 클랜스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삶과 필모그래피에서 '블랙'이란 컬러를 지워놓고 얘기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Da 5 블러드'에 흑인의 역사와 운명, 현실과 이상 등을 복합적으로 그려 놓는다. 베트남전은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희생은 모두 젊은, 특히 흑인들이 몫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11%지만 베트남전에 참전한 흑인 병사는 32%"라며 "백인보다 더 헌신하는 것이 정당한가"라고 베트콩 선전방송이 묻고 있다. 또 "당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 순간에도 미국 파시스트들은 당신의 종족을 죽이고 있다"며 자극한다.

1770년 보스턴학살 사건,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피살 등 일련의 사건은 미국 역사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늘 비극의 주인공은 흑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베트남전을 마치 미국 흑인들의 운명과 같은 것으로 상징한다.

피로 맺어진 전우들. 그들의 구호는 '블러드'다. 20대 죽을 고비를 넘긴 4명의 분대원이 노인이 돼 밀림으로 들어간다. 관광객을 위한 작은 배가 수로를 미끄러지듯 지난다. 이때 흐르는 곡이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 바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1979)을 오마주한 것이다.

이들이 애써 정글을 찾아가는 이유는 황금만이 아니다. 바로 분대장 노먼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한 것이다. 노먼은 흑인 분대원들에게 한줄기 빛이었고, 흑인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희망이었다.

노먼은 흑인들에게 이상과도 같은 존재다. '지옥의 묵시록'이 광기에 사로잡힌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을 암살하려는 여정이었다면 이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영화 'Da 5 블러드' 스틸컷
영화 'Da 5 블러드' 스틸컷
영화 'Da 5 블러드' 스틸컷
영화 'Da 5 블러드' 스틸컷

황금과 노먼은 흑인들의 현실적 욕망과 상실된 이상을 잘 은유하고 있다. 감독은 황금으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한 폴(델로이 린도)을 통해 다시 한 번 현실적 벽을 체감하게 한다. 황금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탐욕에 짓눌린 발걸음, 친구와 자식을 버리는 인간성 상실 등을 통해 흑인의 경제적 처지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장면은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시에라 마드레의 보물'(1948)을 떠올리게 한다. 황금으로 인간의 영혼이 황폐화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Da 5 블러드'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베트남전의 기록영상과 이 당시 반전 시위와 함께 불거진 흑백갈등에 대한 사진 등을 적절히 섞어 인종적 정의를 요구한다. 영화 마지막에는 현재 전 세계를 달구고 있는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문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메시지에 비중을 두다보니 드라마는 허술한 단점이 있다. 곁가지 이야기들을 어수선하게 풀어내는 바람에 2시간 35분의 긴 러닝 타임을 쓰고도 드라마의 밀도는 약한 편이다. 미국 연예 매체가 극찬을 했고, 영화 평론 전문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92%의 신선도를 기록했지만, 전후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국가의 관객들에게는 낯선 영화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인종 차별에 대한 반대와 반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시점에 나온, 영화 인생 전체를 걸고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온 흑인 감독의 작가 의식이 돋보이는 역작임에는 틀림없다. 155분. 청소년 관람불가.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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