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훈이 가공된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새 장편소설을 냈다.
김훈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문장과 표현의 힘이다. 간결하면서도 힘이 있는 문장은 표현의 정확성이 담보될 때 가능하다.
이 책에서는 그 힘이 더욱 빛을 발한다. 문장은 잘 벼린 칼처럼 예리하고 표현은 냉정한 듯 마음을 사로잡는다. 굳이 장르를 밝힌다면 이 소설은 일종의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적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 규정은 중요하지 않다. 역사소설 3부작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의 '일러두기'를 통해 밝혀왔던 것처럼 그의 소설은 '오직 소설'이고 '다만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일 뿐이다.
이 책은 시원(始原)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한다. 굳이 시대를 밝히자면 인간이 말 등에 처음 올라탄 무렵이지만, 그 시기를 인간의 역사에서 가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록이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는 역사 이전의 시대이며, 인간의 삶이 자연에서 분화하지 못하고 뒤엉켜 있는 상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접해본 적 없는 전폭적이고 독창적이며 흥미로운 설정이다.
기록으로 전하지 않는 아득한 시간과 막막한 공간을 작가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채워간다. 이야기는 세계를 인식하는 바탕과 삶을 구성하는 방식이 다른, 결코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두 나라 초(草)와 단(旦)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야만과 문명이 충돌하며, 그 속에서 무연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울부짖으며, 태어나고 또 죽어간다.
소설의 중심에 두 마리의 말이 등장한다. 초승달을 향해 밤새도록 달리던 신월마(新月馬) 혈통의 토하(吐霞)와 달릴 때 핏줄이 터져 피보라를 일으키는 비혈마(飛血馬) 혈통의 야백(夜白)이다. 두 마리 말은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도하고 전후의 폐허에서 조우한다.
작가는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 나는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는 소설 에필로그에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라고 적었다.
김훈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고대국가 시대부터 인간이 서로 대립하며 피를 흘렸던 폭력성의 뿌리와 공포의 근원을 써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김훈은 말을 주요 캐릭터로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말은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였다"면서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10여년 전 미국 그랜드 캐니언 남쪽 원주민 마을을 방문했을 때 어둠 속에서 수백 마리 야생마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말에 관해 써야겠다는 모호하고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한국마사회 도서관에 가서 말의 생태와 역사 등에 대한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구상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김훈은 이번 소설을 통해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고 자부했다. 그는 "화가의 물감이나 음악가의 음정에다가 정보 기능과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합쳐 지금까지 써본 적 없었던 새로운 언어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72쪽, 1만4천원.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