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부터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국민들이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어떤 사실을 부정할수록 듣는 사람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BBC 앵커 출신인 빌 맥파런은 부정적인 언어를 분홍 코끼리로 비유했다. 덩치 큰 코끼리가 만약 분홍색이기까지 하다면 눈에 띄지 않으려야 않을 수 있겠는가. 부정적인 표현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격성과 차별을 내포한 히틀러의 언어가 전쟁을 초래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언어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되고 갈등의 악순환을 유발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한다. 새로운 것을 표현할 때 기존 언어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나의 한계'라고 했고, 사피어와 워프(Sapir&Whorf)는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고 했다. 독일인들은 물 위에 놓인 다리를 보고 아름답다, 우아하다는 형용사를 떠올리지만, 스페인어 사용자들은 강하다, 길다와 같은 남성적인 단어로 수식한다. 다리가 독일어에서는 여성명사지만 스페인어에서는 남성명사이기 때문이다. 언어마다 주목하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언어의 사용자들도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 달라진다. 우리는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고 있지만 멕시코 원주민인 마야인들은 다섯 가지 색으로 나타낸다. 색깔을 구분하는 단어의 유무에 따라서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르게 인지하는 것이다.
생각은 말을 만들고 말은 사람을 만든다. 언어는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동안 man으로 끝나는 남성형 단어들이 여성까지 포괄해 왔지만, 타임지는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Man of the Year)이 남성 중심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Person of the Year로 바꿔 부르고 있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적 사고의 차이가 언어로 드러나기도 한다. 영어와 일본어를 모두 구사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에게 자신과 가족 중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영어로 질문했을 때는 '자신'을, 일본어로 질문했을 때는 '가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말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맨 끝에 오기 때문에 전체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 이러한 돌려 말하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 큰 의미를 두는 동양권 문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서유럽의 정치적·종교적 통일을 이뤄낸 카롤루스 대제는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만큼 언어는 내적인 사고와 불가분의 관계다. 일본 제국주의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어를 금지했고, 조지 오웰의 1984에서 그린 감시 사회에서도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박탈하기 위해 어휘의 개수를 축소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의 제한은 디스토피아의 클리셰다. 앞서 빌 맥파런이 제안했듯이 언어에서 몰아내야 할 것이 있다면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언어들이다. 물론 긍정적인 사고와 언어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넓게 보는 안목을 가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을 하다 보면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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