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등록금 환불 문제로 대학생들이 학교 밖 길을 걷고 있다. 사상초유의 감염병 사태에 학생 불편이 끊이지 않았지만 학교, 교육부, 정부 모두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서다.
전국 대학 대부분이 1학기 내내 비대면 사이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집단 감염을 막으려면 필연적인 선택이었지만 그에 따른 준비는 철저하지 못했다. 번복하는 학사일정 공지 속에서 급하게 온라인 교육환경이 마련됐지만 곧이어 '수업의 질'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학교 밖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을까. 대구지역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은 전국 대학 최초로 지난 2일부터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는 국토 대장정에 나섰다. 이들은 경북 경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세종시 교육부까지 꼬박 8일을 걸었다. 학습권 보장을 외치는 학생의 목소리에 교육부가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대학의 책임으로, 대학은 묵묵부답으로 여전히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 피 같은 등록금 내고 회의감만 느낀 1학기
#1 교수님들은 곧 얼굴을 보게 될 테니 그때 가르쳐 주겠다며 학기 초에 수업을 거의 안 했어요. 대신 턱없이 많은 과제로 수업을 때웠죠. 아니 도대체 배우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풀라는 거죠? 이럴 거면 제 등록금에 포함된 강의료는 학교가 왜 가져갑니까? 돌려주세요. (경북대학교 4학년)
#2 학교는 교육환경 조성에 등록금을 초과해서 썼다고 돌려주지 않습니다. 학생들도 없는 교정에 튤립을 심거나 분수를 트는 것이 과연 정말 필요한 것이었나요? 채 30분도 안 되는 성의 없는 강의, 이조차 제때 올리지 않았습니다. 학교 안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무리하게 대면 기말시험을 치르려는 학교 행동에 또다시 화가 납니다. (계명대학교 3학년)
#3 이번 학기 내내 학교 시설이라곤 화장실조차 이용해본 적이 없어요. 수업도 PPT만 읽는 수준이에요. 학교는 온라인 강의를 위한 장비를 마련하느라 돈을 썼다는데 녹음이 안 되거나 끊기는 일도 태반이고요. 여태껏 대답을 회피하다 다른 학교가 특별 장학금을 뿌리니 마지못해 10만 원 찔끔 주는 것을 보고 4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이 뼛속까지 아까웠습니다. 불효자가 된 것 같았어요." (영남대학교 4학년)

#4 전공특성상 실습수업이 대부분인데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면서 소통마저 안 되는 수업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집에서 작업이 도저히 불가능해 학교를 찾았지만, 실습실 등 학교 시설을 이용하는데 제약이 너무 컸어요.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대구가톨릭대학교 4학년)
#5 학과생활, MT, 축제, 동아리활동 등 꿈꿔왔던 학교생활을 하나도 할 수 없었어요. 집단 감염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들었던 EBS 무료강의보다 못한 사이버 강의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진정 대학교 수업이라면 자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대구대학교 1학년)
대학생들 대부분이 이번 학기 등록을 위해 등록금을 냈지만 수업의 질, 학교 시설 이용 등 학교 서비스에는 크게 불만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신문 디지털국이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지역 대학생(경북대, 계명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영남대) 255명을 조사한 결과 233명(91.4%)이 코로나19 사태로 원하지 않는 사이버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 응답했다.
온라인 강의가 대면 강의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밝힌 인원은 모두 236명(92.5%)이었는데 특히 ▷정규 수업시수를 무시한 고무줄 강의 ▷단순 유튜브 영상, PPT, 책 읽기에 불과한 강의 내용 ▷연락 무시·소통 불가능한 비대면 강의 ▷과도한 과제 등이 주로 거론됐다.
◆ 등록금 50% 환불 원하는 학생들이 최다


코로나19로 예고 없이 바뀌는 학사 일정으로 어려움을 느꼈다는 인원은 235명(92.2%)에 달했다. 학교의 행정서비스에 불만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인원 역시 225명(88.2%)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대학생 A(24·대구 달서구) 씨는 "뚜렷한 대책이 없으면서 학생의 의사를 무시한채 수업·시험·체점·학점부여 방식을 마음대로 통보한다거나, '예산이 없다'고만 하면서 코로나19 사태 속 학생 등록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전혀 공개를 안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며 "학과 행정실은 제 멋대로 바뀌는 학사 일정을 제대로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고 열을 올렸다.
수업 외 취업·창업지원, 동아리 등 학내 대외 활동 등이 코로나19 사태 속 비대면으로도 잘 이뤄졌다고 밝힌 인원은 단 5명에 불과했다. '대체로 아니다' 117명(45.9%), '전혀 아니다' 104명(40.8%) 등 학교의 여러 학생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학생이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 183명(71.8%)이 실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주로 월세, 생활비, 용돈 등을 충당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밝혔다. 등록금을 충당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다고 응답한 인원은 113명(44.3%)으로 과반을 넘기지 않았다.
1학기 등록금이 아깝다고 밝힌 인원은 245명(96,1%)으로 대다수 학생이 등록금 환불에 동의했다. '만약 등록금을 돌려받아야 한다면 얼마가 적당 하냐'는 질문에 '반액'이라고 응답한 인원이 112명(43.9%)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얼마든 간에 학교 측에서 돌려줘야 한다'(19.6%), 75% 수준(17.3%) 25% 수준(9.4%) 순이었다. 전액 돌려받아야 한다는 응답도 11명(4.3%)에 달했다.

◆ "불통 더는 못 참아" 혈서까지 등장
학교 측에 맞선 학생들의 반발 방식도 다양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혈서까지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5일 한양대 본관 앞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농성현장을 방문한 기획처장이 "비대면 시험 할거면 학생들 혈서 받아올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을 두고 한 학생이 최근 '등록금 반환'이라고 적은 혈서를 실제로 써서 올린 것.
연세대 익명커뮤니티에도 '연세대 10만원'이라고 쓴 혈서가 등장했다. 게시자는 "등록금 반환 요구에 대한 '10만원 망언'을 하는 등 학생들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학교에 회의감이 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연세대 학생복지처장은 등록금 반환과 학점 부여 방식 변경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학교의 주인이 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등록금 깎아달라 하면 되나. 학생들이 10만원씩 더 내자는 말은 왜 못하나"고 발언을 해 논란을 산 바 있다.

포털사이트를 활용한 이른바 '검색어 총공'도 학생들의 반발 방법 중 하나다. 각 대학교 학생들은 최근에 '○○대는 소통하라'는 검색어를 특정 시간에 집중적으로 입력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리는 것. 소통을 거부하는 학교에 불만을 품은 학생들이 학내 분쟁을 온라인을 통해 외부에 알리는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국토 종주도 계속되고 있다. 경신시청에서 교육부 세종청사까지 230㎞를 걸은 대구 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에 이어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는 교육부 세종청사에서 국회의사당까지 150㎞를 걷고 있다. 이들은 20일 오후 6시부터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에 상반기 등록금 반환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앞서 교육부 종주에 참여한 박종주 영남대 총학생회장은 "수 많은 학생들이 학교와 소통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려고 했지만 학교와 교육부는 원론적인 답변에 그쳤다"며 "학생 개개인의 목소리와 해결이 안되면 연대하고, 학교 외부에도 적극적으로 알려 공론화 하자는 것이다"고 취지를 밝혔다.

◆ 대구권 대학들 '입. 꾹. 닫' (입을 꾹 닫았습니다)
서울 건국대가 지난 15일 전국 대학 중 처음으로 2학기 등록금을 감면하기로 하면서 다른 대학들의 대책발표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산권 대학 대부분은 등록금 반환과 관련 별도의 대책 마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역 대학들은 교육부의 발표를 예의주시하면서도 등록금 관련 사안은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경북대는 국립대 특성상 등록금 자체도 사립대에 비해 적고 감면문제도 대학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역 사립대에서는 예산 문제가 가장 많이 거론했다. 이미 10년 이상 등록금을 동결해 적자가 누적되고 된데다 앞서 코로나19 사태 특별 장학금을 지급해 예산상 도저히 등록금 감면 여력이 없다는 것.
계명대는 등록금 환불 관련해 현재로선 대학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계명대는 지난 4월 학부·대학원 재학생에게 생활지원 학업장려비로 1인당 20만원을 지급했다. 교수, 교직원 등 직원 2천여 명이 자발적으로 봉급 일부를 반납해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명대 관계자는 "교직원이 십시일반 재원을 마련해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한 만큼 추가 등록금 환불을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영남대는 등록금 환불과 관련해 학생 요구안에 귀 기울이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하거나 협의한 적은 없다. 영남대 관계자는 "이미 전교생에서 10만원씩 특별 장학금을 지급했다" 며 "그 외 대책은 논의되는 것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구가톨릭대는 곧 전 학생을 대상으로 특별장학금 2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며 그 외에는 정해진 것이 특별히 없다. 대구대도 등록금 환불과 관련해서 내부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없다.
학교 측의 소극적인 대처는 교육부가 이미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대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요구는 대학과 학생 간 해결문제라고 못을 박은 상황에서 섣불리 대학이 자체적으로 재정부담을 떠안을 수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교육부는 지난 18일 "대학 재정 상황이 어렵다는 점을 공감한다"면서도 "등록금 문제는 각 대학이 학생과 소통을 통해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교육부가 대학생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지원은 못 하는 것이고 이 원칙은 계속 발표해 온 내용"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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