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시민들의 일상이 다시 멈췄다.
감염 위험지역으로 지정된 펑타이구 등에 위치한 회사와 각급 기관은 문을 닫고 '재택근무체제'로 전환됐다. 시장이 폐쇄되고 학교도 문을 닫았다. 주거지역인 아파트는 출입구 하나만 제외하고 봉쇄됐다. 외부인의 출입은 완전 통제됐다.
영화관과 박물관 등 다중이용시설의 영업 재개는 취소됐다. 장거리 시외버스 운행도 중지됐다. 항공편과 열차는 7일 이내에 발급받은 핵산검사음성증명서(코로나 음성)를 제시해야 탑승할 수 있다.
베이징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베이징으로부터 유입되는 여행객의 출입을 거부하거나 1, 2주간의 격리조치가 즉각 시행되고 있다. 베이징이 봉쇄됐다. 베이징 갈 날이 다시 멀어졌다.
우한발 코로나19 사태를 종식시켰다고 선언하면서 해외 감염 유입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 온 중국 방역 당국의 그동안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10일 만에 베이징 확진자 수는 200명을 넘었다. 최초 감염자가 나온 펑타이구를 넘어 베이징시내 절반 이상 지역으로 확산됐고 인근 허베이성 등으로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베이징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신파디(新發地) 시장에서 시작된 '베이징 코로나'는 18년 전인 2002년 겨울 발생한 사스(중증호흡기증후군) 사태의 데자뷔(dejavue)다.
그해 12월 광둥성(廣東省)의 작은 소도시에서 발원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은 수개월 동안 소리없이 번져나갔다. 전 세계 확산의 도화선이 된 홍콩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확인되고 나서야 중국 정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경보를 울리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럼에도 '사스'로 명명된 감염병은 베이징에 입성, 조용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당국은 감염 정보를 은폐, 초기 방역에 실패했다. '소문'을 통해 사스라는 괴질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자 방역책임자인 위생부장(보건복지부장관)은 '(베이징) 감염자는 30여 명에 불과하고 잘 통제하고 있다'는 거짓 발표를 했다.
하지만 TV로 이를 본 사스전담병원으로 지정된 인민해방군 301병원 의사 장옌융(蔣彦永) 박사가 국제사회에 편지를 보내 대규모 사스 발병 상황을 폭로하면서 사스 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2002년 말 장쩌민(江澤民)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위생부장과 베이징시장을 전격 경질하고 사스 발병 정보를 인민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베이징 코로나' 재발도 이와 비슷한 정보 은폐와 대응 잘못이라는 과정이 드러났다. '철통같은' 베이징 방역망을 뚫고 발병한 시점이 이미 한 달여 전이라는 분석도 제기된 상태다.
코로나 사태로 3월에서 5월로 연기된 전인대와 정협 등 양회(兩會)가 21일부터 일주일간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양회 개최 기간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올 경우, 시진핑(習近平) 체제에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했다. 방역 당국이 감염 정보를 고의로 은폐했을 개연성이 상당하다. 10일 만에 200명 이상으로 확산된 감염 속도는 베이징이 코로나바이러스에 상당 기간 노출돼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당국이 베이징 감염자가 터져 나온 초기, 곧바로 펑타이구 부서기와 신파디시장 사장을 전격 해임하는 등의 조치를 내린 것도 '사스' 때의 '꼬리 자르기' 수순과 흡사했다. 당시 경질된 멍쉐농(孟學農) 베이징시장이 후진타오 주석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읍참마속을 통한 권력 기반 확보라는 절묘한 정치적 노림수였다는 분석도 있다. 베이징의 이번 코로나 해법에도 그러한 정치적 계산법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사스의 기억'은 더욱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해 8월 여름휴가를 베이징으로 가서 3박 4일간 사스 공포가 가시지 않은 베이징을 경험했다. 중국 정부의 사스 종식 선언을 순진하게 믿었던 필자는 관광객이 사라진 톈안먼 광장 등 베이징 시내를 활보하면서 여유 있게 '황제 여행'을 했다.
그해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도 외국 정상으로는 사스 사태 후 처음으로, 7월 7일부터 국빈 방문에 나서 중국을 감동시켰다. 5, 6월 미국과 일본 순방에 이어 7월 중국을 방문, '3강 외교'를 완성했고,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현장을 지켜봤다.
그때로부터 17년이 지났다. '데자뷔' 현상을 보여준 베이징 코로나 대응은 자칫 G2 중국에 대한 신뢰를 깡그리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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