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개교한 대구 평리중학교는 대구 서구 평리동, 그러니까 지금의 서구청 뒤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평리중학교 개교 당시의 불편함을 보도한 기사가 당시 8면 톱 기사로 실렸습니다. 당시에는 학교 앞 도로가 비좁아 버스노선이 없었고, 도로 자체도 엉망이어서 학생들이 등하교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하는 바람에 다른 학교보다 수업을 10~20분 늦게 시작하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과 학교 사이가 걸어서 20분 거리라고 하니 학생들이 등교하다 지치는 건 당연한 일로 보이네요.
지금은 어떨까요? '평리중학교 앞/건너'라는 버스정류장도 있고, 서구 1번이 이 곳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곳 인근도 현재 재개발이 진행중인 곳이 많아서 기사에 나온 불편한 부분을 찾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아직도 이곳 도로는 좁은 편이기도 해서 불편한 부분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100% 개선되지는 않아 보입니다.

지금은 중학교 배정이 추첨 형식인 게 당연했지만 50년 전만 해도 중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때 나온 유명한 일화가 '엿 먹어라'라는 말의 기원이 된 1965학년도 입학시험 당시의 무즙파동이었죠.
1964년 12월7일 전기 중학입시의 공동출제 자연과목 18번 문제는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였었습니다. 공동출제위원회의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무즙을 선택했죠. 이 문제 하나로 당락이 갈린 학생들의 부모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열성 부모들은 아예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엿 먹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겁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은 1969학년도부터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를 시행합니다. 그러면서 나온 문제 하나를 매일신문이 지적한 기사가 바로 1970년 6월 24일자 신문 7면에 실린 '어린이 素質(소질) 뭉개는 '고집''이라는 기사입니다.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하다 보니 초등학교에서 운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운동부가 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전학하고 싶어도 '시내전학불가' 규정 때문에 전학도 못하기 때문에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거죠.
지금은 체육특기자의 중학교 배정에 대한 규정이 각 교육청마다 따로 마련돼 있어서 이런 불상사가 적지만, 제도 초기의 억울했던 학생들이 꽤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 분들은 자라서 운동선수가 됐을까요, 아니면 그냥 꿈을 접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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