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도수의 불가사의 인도] 인도를 변화시킨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압둘 칼람 대통령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필자가 40대 시절 미국 하와이대학 도서관에서 친교를 맺은 동갑내기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과 헤어진 지 20여 년 만인 2002년 처음으로 이메일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는 자랑과 함께 그의 저서 The Argumentative Indian을 소개했다.

그 책 제목 속의 'argumentative'라는 말의 의미가 알쏭달쏭하여 필자가 이듬해 미국 뉴욕주의 몬클레어 주립대학교 부설 아동철학연구소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파견된 학자들과 그 책 내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인도 민족은 고대부터 어느 다른 민족보다 지적탐구욕(argumentative)이 강하다는 주장과 함께 그 주장에 대한 다양한 증거를 제시했다.

숫자 '0'의 발명을 비롯하여 수에 대한 개념이 다른 민족보다 일찍 개발되었다는 사실, 또 천문학 지식과 불경 전달을 위해 인도불교대학에서 발명한 인쇄술이 중국으로 전파된 후 중국의 제지기술과 병합되어 인도로 역수입되면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된 과정 등이 소상히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 책을 읽고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감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수가 많으니 군계일학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을 뿐이지 인도의 대다수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계급제도에 억눌려 사는 후진국이라는 종래의 고착관념을 쉽게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참에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으로부터 또 다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이번에는 그가 2002년도에 인도 대통령으로 선출된 압둘 칼람의 자서전 '불의 날개'를 소개했다.

압둘 칼람을 통해 인도 출신 노벨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이 인도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운 지적탐구욕의 대표적 화신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 남부 타밀주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압둘 칼람은 인도의 주류사회에서 따돌림받는 이슬람교도였지만 어릴 적부터 지적탐구욕이 뛰어났다.

누나의 헌신적인 학비 보조로 마드라스 공과대학 항공우주공학과에서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었는데 그의 지적탐구욕이 워낙 강했기에 학교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마침내 그의 연구 결과로 최고상을 받게 되자 인디라 간디 총리가 그를 축하만찬에 초대했는데 만찬장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불참했다는 일화도 소개되었다.

압둘 칼람은 인구 12억 명의 대국 인도 대통령에 오르면서 "2020년까지 인도를 지식 초강대국으로 변모시키고 선진국으로 도약하자"고 했다. 그가 인도의 국방개발연구소 소장을 맡게 되었을 때, 당시 주변의 국제 상황 변화에 따라 인도가 핵실험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핵실험에 성공하자 국민들의 열화 같은 환호를 받아 그가 대통령에 추대된 것이었다. 그는 애초에 세속적인 욕망이 없었기에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나라를 위해 헌신하다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때 소유물이라고는 달랑 가방 두 개에 불과하여 모든 인도 공직자들에게 청렴결백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과학자 대통령 압둘 칼람은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백면서생이나 정치 교수(폴리페서)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인도에는 세습된 신분을 이용하여 출세를 노리는 사이비 수행자나 도인들이 수두룩하다. 그러기에 필자와 다년간 흉금을 트며 친교를 유지해온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이 인도 민족정신의 귀감으로 그 두 인물을 나에게 소개한 진의를 깨닫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신분제도가 세습되는 인도에서 지적탐구욕 하나만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고 12억 인구 대국의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 친구의 진의를 새삼 되새기며 신나는 기분으로 그들의 삶을 반추하며 읽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