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에 있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K팝 팬들의 '노쇼 시위'는 미국 내에서 K팝의 영향력 크기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K팝이 소위 말하는 미국 메인 스트림 팝 음악이 주지 못하는 어떤 메시지를 줬고 그 메시지가 K팝 팬들이 정치 행위를 하도록 이끌어 낸 것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한국 내 분위기는 이와 다르다. 괜히 K팝 팬들이 미국 정치에 관여하는 게 자칫 한국 문화가 미국에 전달되는 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향후 한미 외교에 있어서 미국이 한국을 괴롭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트위터를 통해 돌고 있었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데에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중음악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탄압받았던 역사가 있던 우리나라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걱정일 수 있다.
오히려 더 심각한 시각은 따로 있다. "문화가 정치와 엮이는 게 싫다"라는 시각인데, 이 시각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국의 아이돌 팬들이 이런 우려를 하는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세상에 때묻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어떤 바램이 있는 것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내 추측이 맞다면 이런 바램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민주시민이 아닌 '순수한 인형'으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미 K팝은 정치에 등장한 지 오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단초가 됐던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논란'과 당시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현장을 생각해보자. 당시 시위현장에서 불렸던 노래는 '아침이슬'이나 운동권 가요가 아니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그리고 당시 매주 토요일에 있었던 탄핵 시위 때도 많은 아이돌 팬들은 음악방송에 갔다가 광화문에 가서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면서 시위에 동참했다. 또 방탄소년단은 이번에 벌어진 미국 내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지지했고, 흑인 인권 운동 단체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정치와 엮이는 게 싫으면 투표하러 가는 것도 말려야 할 판이다.
어떤 팬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자기 노래가 정치적인 데 쓰이는 걸 아이돌이 좋아할까?"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작가는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뿐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일단 세상에 나온 노래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전적으로 수용자와 팬의 몫이다. '다시 만난 세계'가 이화여대에 울려퍼졌을 때 SM엔터테인먼트가 어떠한 제재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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