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6월 25일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2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실린 6·25 관련 기사 중에 무공훈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곤궁했던 한 참전용사의 이야기가 실려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당시 나이로 49세인 김석조 씨의 이야기인데요,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자원 입대, 참전했다고 합니다. 영변 전투에서 미군 대위를 구해 미군으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고,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을 생포, 화랑 무공훈장을 받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전쟁 중 어깨에 부상을 입고 1953년 4월 10일 제대를 했다고 합니다. 제대 후 살길을 찾기 위해 결국 마산(지금의 창원시)에 내려와 리어카로 날품팔이를 하고 있는데, 하루 벌이가 200원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미군이 수여한 은성무공훈장에 상금 1천800달러가 나왔는데, 김씨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 돈이 누구에게 흘러갔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또 명예제대하면 국가에서 주는 원호금도 받아보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요즘에도 보훈청 등에서 여러 방면으로 신경을 써도 보훈 혜택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옛날이면 오죽했겠습니까. 아마 당시만 해도 김씨와 같은 경우가 적지는 않았을것 같습니다. 당시 참전했던 병사들은 이제 90세 안팎의 어르신이 됐을텐데, 이 분들의 노고와 영광을 잊지 않는 하루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된 건 1970년 7월 7일이고,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간 구간이 개통된 건 1969년 12월 19일입니다. 이번 기사는 경부고속도로 대구~부산 구간의 시설부족에 대한 문제를 짚은 기사입니다.
첫머리부터 "형식적인 준공에만 치중해 도로에 따른 부속시설을 등한시함으로써 문젯점을 드러내고 있다"라고 쓰고 있네요.
기사가 지적한 첫 번째 문제점은 고속도로변 버스정류장 5곳 중 화장실이 있는 곳은 2곳 뿐이며 그나마도 정류장에서 20m 떨어져 있어 대부분 여행자들은 노상방뇨를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또 휴게소 시설이 없어서 버스정류장이나 노상에 어린이들이 잡상인이 돼 물건을 팔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어린이 잡상인들은 도로변에서 손님이 부르면 도로를 가로질러 물건을 파는 탓에 사고 위험도 높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들이 파는 물건들이 모두 불량식품에 가까워서 문제가 있다고도 하네요.
지금의 고속도로는 휴게소와 졸음쉼터 등으로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최대한 확보하고 있습니다. 50년 전과 비교하면 놀랄 만큼의 발전이지요. 앞으로도 더 발전할 고속도로 서비스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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