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利休). 그는 일본의 다성(茶聖)이라 불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茶頭)로 활약한 센 리큐(센노 리큐라고도 한다)의 일대기를 소설로 풀어 엮은 '리큐에게 물어라'.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역사 소설가로 꼽히는 야마모토 겐이치는 이 책으로 제140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 천황에게 하사받은 법호인 리큐의 리(利)는 날붙이의 날카로움을 의미하고, 큐(休)는 그 날카로움이 둥글둥글 무딘 경지에 이르라 함이라는 뜻이다. 다이토구 사(大德寺)의 고케이 소친이 지어 천황에게 바쳤다 한다. 센 리큐의 미적 안목이 얼마나 예리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아름다움은 결코 얼버무릴 수 없습니다. 도구든, 행다든, 다인은 항상 목숨을 걸고 절묘한 경지를 추구합니다. 찻숟가락에 박힌 마디의 위치가 한 치라도 어긋나면 성에 차지 않고, 행다 중에 놓은 뚜껑 받침의 위치가 다다미 눈 하나만큼이라도 어긋나면 내심 몸부림을 칩니다. 그것이야말로 다도의 바닥없는 바닥, 아름다움의 개미지옥. 한번 붙들리면 수명마저 줄어듭니다."(288쪽)
센 리큐의 대사다. 아름다움을 위해 목숨을 걸 만한 각오로 정진하는 그의 삶이 탕관의 물처럼 뜨겁게 끓어오른다. 그의 마음은 시골 정취의 소박함을 추구하는 와비 차의 표면과 달리 관능과 열정의 이면으로 가득 차 있다. 열아홉에 마음 깊이 품은 조선 여인을 차 한 잔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평생을 가슴에 담았다. 그 여인의 유품인 녹유 향합이 센 리큐 할복 이후에야 부인 소온의 손에서 산산 조각 나는 마지막 장면은 리큐의 뜨거웠던 일생을 관통하는 다심이 생사일여의 연심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본래 건어상이라는 가업을 잇던 리큐는 다인이 된 이후 타고난 심미안으로 다기를 감식하고 와비 차를 정립했다. 오다 노부나가를 섬긴 후 뒤를 잇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두가 되었으나 관백(히데요시)의 눈 밖에 났다. 할복 명령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센 리큐가 딸을 관백에게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 리큐가 조선 침략에 반하였기 때문이라는 설, 그리고 다이토쿠 사 산문 누각에 리큐의 목상이 안치되어 관백이 그 밑으로 지나다니게 한 불경죄 설 등이 있으나 명백한 죄목은 있지 않았다. 소설 속 센 리큐는 시종일관 위풍당당하고 열의에 가득 차 있으며 탁월한 다도에서의 품격과 예리한 심미안이 강하게 묘사된다. 그는 일본의 정신문화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가 할복 명령을 받아들임으로써 다도의 정신은 일본에서 더 널리, 더 깊이 퍼지게 된다.
다도에 대한 센 리큐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은 독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삼독(三毒). 번뇌를 일으키는 세 가지 독이라 욕심, 노여움, 어리석음일진대, 리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사람은 누구나 독을 갖고 있겠지요. 독이 있기에 살아갈 힘도 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욕심이 있기에 살아갈 힘도 솟는다.
"중요한 것은 독을 어떻게 지(志)로 승화시킬 것인가. 높은 곳을 지향하며 탐하고, 범용한 것을 노여워하고, 어리석으리만큼 노력하면 어떠하겠습니까."(274쪽)
다성이 말하는 삶의 자세이리라. 다인의 삶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삶이 이와 같아서 탐진치에 빠져 허우적대지만 삶을 고(苦)의 바다로 여기지 아니하고 부단한 생명의 과정으로 생각하면 삼독도 지로 승화되리라는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김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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