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입학하기도 전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이미 1965년도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책과 영화로 전국적으로 이미 스타가 되신 대단한 분 이셨다.
1967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 하던 날, 선생님은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초등학교에서, 청구중학교로 첫 부임(赴任)하면서, 우리 1학년 담임(擔任)을 맡으셨다.
입학식 날 처음 본 선생님의 첫인상은 키와 덩치도 크시고, 가슴도 넓고, 유도를 하셔 체육선생님 인줄 알았는데, 국어선생님이셨다. 강한 카리스마로 항상 우리 개구쟁이 얄개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선생님의 '제자사랑의 매'는 유별나고도 독특했다. 선생님은 "나무에 가위질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라고 늘 말하셨다. 수염이 유난히 많았던 선생님은 까까머리 우리들에게 벌을 줄때는 긴 턱수염 으로 학생들의 얼굴을 넓은 두손으로 잡고, 이마에서 코끝까지 내리 긁었다. 그러면 얼굴은 엄청 화끈거리고, 따가워 2~3일 가량 세수 할 때면 고통스러웠다.
선생님은 늘 자전거 타고 출퇴근 하시면서, 길을 가다 비행청소년, 불량배, 가출청소년 들을 보면 훈계, 선도(善導), 격려 하느라, 학교 수업 의 일정이 점점 뒤로 밀리기 일쑤 였으며, 불량청소년을 선도하다. 불량배, 깡패들에게 많이 봉변(逢變)을 당하시기도 하셨다. 그래도 선생님은 굴(屈)하지 않고, 선도 하셨는데, 우리들은 수업시간에 늦게 오시면, 청소년들을 선도하다 늦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까까머리 우리들의 앞날을 위해 일기쓰기를 통해 뿌리를 깊게 잘 심어 주려고 노력하셨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지키며, 올바른 학교생활, 인내와 배려를 가르쳤다. 수업시간 교실에 들어오시면 항상 칠판 위 국기(國旗)에 대해 경례를 하는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몸소 실천 하셨고, 그러면서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불량청소년, 비행, 가출청소년 들을 바르게 선도(善導)를 하다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늘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지만, 늘 우리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비록 지위가 높지 않게 살았더라도, 비록 가난하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너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고 매 순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은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남에게 봉사를 하고, 배려하며 살아라"고 하셨다.
이렇듯 선생님은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계신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김동식 선생님의 영원한 제자 도창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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