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성규와 지원이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성규와 지원이는 동갑내기 근육병 환자였다. 진료를 먼저 온 건 지원이였다. 뺨이 통통하고 잘 웃는 지원이는 남자애인데도 썩 귀여운 인상이어서 별명이 '생글이'였다. 성규는 그에 반해 좀 뚱한 스타일이었다. 내가 농담을 던지면, "아~ 쌤~ 쫌~"하며 틱틱대면서도 좋아하는 환자였다.

둘 다 '뒤시엔느 근이영양증'이었고, 처음에는 뒤뚱거리며 걷다가 점차 보조기를 해야 했고, 나중에는 휠체어생활을 해야 했다. 둘 다 귀여운 사내아이였지만 둘의 학교생활은 완전히 달랐다.

하루는 성규 어머니가 내게 성규가 밤을 새서 공부를 한다며 좀 말려달라는 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성규는 척추측만증이 굉장히 심해서 똑바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성규가 전교 1등을 해서 교장 선생님께 한번 상을 받고 나서는 그걸 안놓치겠다고 밤샘 공부를 한다는 거였다.

성규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성규는,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는 게 무척 기분이 좋다고 했다. 휠체어를 탄 채 친구들의 박수를 받는 성규를 상상하는 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반면 지원이는 못 걷게 된 후론 사이버수업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런데 지원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잘 웃고 똘똘하던 생글이 지원이가, 눈도 맞추지 않고 말을 더듬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지 못했다. 어머니께 물어서 보게 된 지원이 방 사진엔, 40인치는 족히 될만한 TV가 지원이 침대 바로 앞에 있었다. 지원이는 전동침대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있었고 TV와 연결된 컴퓨터로 사이버수업이 끝나면 하루종일 게임을 한다고 했다.

호흡재활치료를 잘 받으면 예후가 좀 낫지만 보통 20대에 심장병으로 급사하는 경우가 많은 '뒤시엔느 근이영양증'이다 보니, 지원이 어머니는 지원이가 죽기 전에 그냥 편하게 살다 가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뭔가 성취감을 느끼며 살도록 하는게 낫지 않겠냐고는 했지만 지원이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지원이는 띄엄띄엄 진료를 오다가 20살이 되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성규는 우수한 성적만큼 좋은 대학에 입학해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성규는 한 학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심장이 멈춘 채로 응급실로 실려왔다. 최선을 다했지만 성규를 살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고 나는 그야말로 참담한 심정으로 사망선고를 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뭐가 정답이라고 얘기는 못할 것 같다. 근육병임에도 불구하고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휠체어에 앉아 밤샘 공부를 했던 성규와 남은 생 동안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했던 지원이. 결국 둘 다 20대 언저리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고 결국 다 똑같은 거 아니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내가 지원이였다면 결국 마치지 못할 공부였다 해도 나의 노력으로 대학을 들어가고, 휠체어를 탔을 지언정 입학식의 환희를 겪어보는 게 나 스스로에게 더 기쁜 인생이지 않았을까. 매일매일 눈뜨면 맞이하는 오늘이지만 새삼 오늘 하루의 의미가 더 진지하게 다가온다. 내게 와준 소중한 이 하루를 어떻게 채워볼까.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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