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는 우리가 흔히 가족드라마라고 부르는 그런 인물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가족드라마가 그리곤 했던 막연한 가족애를 담는 대신, 우리가 몰랐던 가족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기억과는 다른 가족의 실체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에서 김상식(정진영)은 고압적이고 때론 폭력적으로까지 보이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시청자들로서는 그의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내 이진숙(원미경)이 어느 날 갑자기 "졸혼하자"고 하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그건 이 집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갑작스런 졸혼 선언에 조금 놀라긴 하지만 그렇다고 애써 반대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김상식은 전형적인 가부장이라는 그런 선입견을 드라마는 금세 보기 좋게 깨버린다. 졸혼 선언에 충격을 받았던 김상식은 어느 날 야간산행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기억이 22살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그의 22살 모습은 가부장과는 거리가 먼 사랑꾼 그 자체다. 아내를 "진숙씨"라 부르고 손을 잡고 걸으려 하며 말투도 애정이 가득 묻어난다. 그래서 난감해진 건 오히려 아내다. 그는 젊은 시절 상식의 도시락에 넣어줬던 애정 가득한 쪽지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렸지만, 김상식이 그 기억을 되살려 놓는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은 여리고 쉽게 왜곡된다. 심지어 가족에 대한 기억조차 그렇다.
자신이 사실은 그런 폭력적인 남편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상식은 기억을 되찾았다 거짓말을 하며 진숙을 위해 졸혼을 서두른다. 그런데 상식과 진숙 사이에는 가족들은 모르는 비밀이 존재했다. 맏딸 은주(추자현)가 상식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 대학시절 은주를 갖게 된 진숙이 아기를 위해 자신을 짝사랑하던 상식과 결혼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상식은 임신한 진숙까지 받아들이며 헌신한 아빠인가 아니면 그걸 약점 삼아 진숙을 억누르며 살아온 가부장인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은주와 둘째 딸 은희(한예리)는 그래서 엄마 편 아빠 편으로 갈라져 심한 말다툼을 벌인다. 같은 엄마, 아빠이지만 가족의 일원인 딸들이 생각하는 그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다르다. 드라마는 질문한다. 우리는 과연 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

◆가족, 가까이 있어 더 모르는
"어떤 과학자가 그랬어. 우리는 지구 내부 물질보다 태양계의 내부물질을 더 많이 안다고. 지구에 살고 있는데 지구 내부물질을 알면 뭐하니 이런 거지. 가족이 딱 그래." 은희의 남사친 박찬혁(김지석)이 툭 던지는 이 말은 사실상 이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다. 가까이 있어 더 모르는 존재가 바로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박찬혁은 가족이라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타인이랄 수 있는 박찬혁이 하고 있는 건 어쩌면 가족이 타인보다도 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걸 이야기해주는 대목이다.
'가족입니다'는 이런 상황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은주의 남편이 성 소수자였다는 에피소드를 더해 넣는다. 결혼해 함께 살아왔고, 아이를 갖기 위해 홀로 고통스런 시술을 받기도 했던 은주였다. 그런데 뒤늦게 남편이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숨겨왔다는 걸 알게 되고 그는 충격을 받는다. 여기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면서 그토록 모든 일에 굳건해 보였던 그는 무너져 내린다. 가족이라 여겼던 삶의 테두리가 그 밑바닥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
김상식과 이진숙의 가족은 그래서 그 비밀을 걷어내고 또 기억의 왜곡을 바로 잡아 들여다보면 마치 하나의 허상처럼 보인다. 가족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믿고 싶지만 사실은 타인보다도 모르는 가족.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족주의 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의 가족이 과연 실체가 있었는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게 허용되던 시절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희생들과 상처들이 비밀처럼 숨겨져 있고 심지어 어떤 건 기억 자체를 왜곡해 애써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하지는 않았는지.
◆개인주의 시대에 묻는 가족의 의미
'가족입니다'는 그래서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부모와 자식들이라는 표피적인 가족이 아니라, 저마다의 비밀이나 기억을 갖고 있는 개인에 초점을 맞춰 그 가족을 다시금 들여다본다. 가부장적인 아빠 상식은 젊은 시절 한 여성에게 순애보를 보내던 사랑꾼이었고, 모든 걸 희생하면서 살아오다 졸혼을 요구한 엄마 진숙은 한때 상식의 도시락에 애정 담긴 메모를 넣어주던 여자였다. 너무나 성격이 달라 자매 같지 않다던 은주와 은희는 실제로 아빠가 달랐고, 그저 겉보기엔 잘 나가는 의사 남편과 변리사 아내처럼 보이던 은주와 남편 태형(김태훈)은 성 정체성 자체를 숨긴 채 살아왔던 걸 뒤늦게 알아차릴 정도로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대가족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고,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요즘 가족의 존재 의미는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한 때 가부장제 같은 권위주의적인 시대가 만든 가족의 문제들은 이제 가족 자체를 거부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대에 '가족입니다'는 새삼 가족의 이야기를 꺼내온 걸까. 그건 가족 해체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가족이라는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혼자 사는 삶이어서 더더욱 새로운 가족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새로운 시대에 가족이란 가족이라는 틀에 매몰되는 개인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인들의 진짜 삶이 모여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그런 가족일 게다. 가족이지만 별로 아는 건 없는 현 시대에 이제 거꾸로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꿈꾸는 이 드라마의 독특한 목소리가 유독 울림을 갖는 이유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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