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견지망월(見指忘月)

 정중규 전  ㈜세스코 고문  

정중규 전 ㈜세스코 고문
정중규 전 ㈜세스코 고문

옛날 어느 불자가 고승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했다. 고승이 스스로 글을 알지 못한다고 하자 불자는 크게 실망했다. 그러자 고승은 실망하는 불자에게 진리와 문자는 무관하다고 했다.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우리의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지만 손가락이 없다고 달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면 안 된다"라는 가르침을 줬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을 무렵 대한의사협회가 "해외 입국을 차단하지 않고 국내 방역에만 집중한다면 창문을 열어 놓고 방 안의 모기를 잡는 격"이라며 해외 입국 차단을 수차례 건의한 바 있었다. 그때 주무장관이란 자는 "지금은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며 모기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이자 견지망월의 전형이라 하겠다.

KBS-1TV '더 라이브' 6월 29일 방송 프로에 모 야당 인사가 출연했다.

"17개 상임위를 여당이 독식했다. 따라서 국회는 없다"고 한 주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두고 그 인사는 "국회가 없다면 의원들 배지 떼고 집에 가야지. 안 그래? 국회가 없는데 의원이 무슨 필요 있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말이 자못 대견한 양 "안 그래요? 내 말이 틀렸어?"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 소아적인 시각에서 한 발언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까지 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백종원 같은 사람은 어떤가?"라고 한마디하자 통합당 모 중진 의원은 "백종원을 희화화했다" "우리가 드린 그 자리를 이용해 자기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설마하니 정치 경험도 전무할뿐더러 자격이나 자질 검증도 안 된 백종원 씨를 대권 후보로 염두에 두고 한 말은 결코 아닐 텐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면서 손톱이 기네 짧네라고 하니 그런 발언들이야말로 정치를 희화화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 의원 말대로 '우리가 드린 그 자리'라면 김종인 비대위원장 발언의 취지를 이해하고 일치단결해서 반대 정파 등의 이런저런 공세를 적극 차단해 줘야 하는 게 맞지 오히려 앞장서서 내부 총질이라니…. 좌파들의 '조국 수호'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정책이 22번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집값은 잡히지 않고 오히려 치솟고 있는 실정이다. 청와대는 집을 2채 이상 소유한 비서관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모두 팔아라'라는 지침을 공개적으로 발표한 바 있으나 다수가 팔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이럴진대 어느 누가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르려 하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잇따른 헛발질 부동산 정책에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다는 성토가 빗발치고 있음에도 정부는 "정책 다 잘 돌아갑니다"라며 들끓는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이번 부동산 대책이 22번째가 아니라 4번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한 것이다. 문 정부의 최대 공약인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작동되어 서민들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느냐의 여부가 관건인데 22번이냐 4번이냐를 두고 정책의 실패를 비켜 가려는 꼼수에 놀라울 뿐이다.

공자께서 이르기를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는 상황을 보면 알지만 우매하고 어리석은 자는 당해 봐야만 안다"고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며 목이 터져라 외쳐 대던 그들의 입에서 좀 더 진실되고 신중하며 품위 있고 향기로움이 넘쳐 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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