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식물과는 인연이 없었다. 식물이 우리 집에만 오면 살지 못했다.
아파트는 층수가 높고 실내 공기가 안 좋아서 그렇다고 핑계를 댔지만, 내가 식물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8년 전 한옥으로 병원을 짓고, 마당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처음 2년간은 나무들이 무수히 죽어 나갔다. 소문으로 좋다는 것에 욕심을 내고 심었다가 관리가 되지 않아서 수시로 파고 뒤집었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몰랐던 계절의 변화를 나무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꽃은 각자가 원하는 시간 간격을 두고 피었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이른 봄에 매화가 피면 뒤이어 수선화, 벚꽃, 라일락, 수국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몇 달간 꽃을 즐기면 더운 여름이 왔다. 이런 간단한 즐거움만을 가지고 꽃에 관심을 가지니 나무가 죽는 일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자 언제, 어떤 꽃이 피는지 알게 되고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런 순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봄이 되면 꽃은 한꺼번에 폈다가 같이 사라졌다. 뭔가 자연의 질서가 무너진 느낌이다.
올해 의사 된 지 40년이다. 의사로서 경험이 쌓이면 환자 보기가 쉬워야 하는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 금연하고, 운동하고, 붉은 고기 적게 먹고, 채소 많이 먹으라고 하지만, 폐암의 30%가 비흡연자이고, 수유를 하고 채소만 먹어도 유방암, 대장암에 걸리는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 과거 젊은이들이 암을 걱정하면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노인이 암 검진을 계속 받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암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성장이 느리니까 이상을 느끼면 방문하고, 그 돈으로 고기나 사 드시라고 돌려보냈었다. 그런데 요즘 20대 젊은이들 암이 늘어나고, 80대 암도 예측 불가능하게 자라는 속도가 달라졌다.
뭔가 이상하다. 식물들은 지구상에서 긴 시간 동안 각자 자라기에 맞는 장소를 찾고, 언제 꽃을 피워야 자기 종에 유리한지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런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은 주위 환경이 식물에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아주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로 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인간이 암에 걸리는 것은 유전자의 돌연변이 때문이다. 그런데 암이 증가한다는 것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외부 환경이 우리 몸의 해결 능력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변화의 원인은 단순히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다. 원인을 쉽게 찾아서 명쾌하게 해결을 못 하는 이유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런 이상한 현상의 원인을 찾다가, 우리를 둘러싼 환경호르몬이라고 부르는 화학물질과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재의 불건강한 먹거리로 인해 인류에 무언가 큰 위협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이번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재앙이었다. 그런데 몇 달간 찬찬히 점검해 보니 그게 전혀 다른 현상이 아니었다. 모습만 달리한 재앙이었다.
연결 고리는 흙을 만지면서 알았다. 나무를 키우면서 흙을 만지니 뿌리와 그 주위의 벌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도우면서 각자 살아가는 이치가 재미있다. 흙과 벌레들의 변화를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현재 복잡하게 얽힌 이상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직감에 따라 그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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