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병원은 헌혈만 하는 곳이 아닙니다. 지난 105년 세상 가장 아픈 곳에 함께해왔습니다.' 10여 년 전 대구적십자병원에 내걸렸던 광고 카피다. 그러나 대구가 코로나19로 큰 아픔을 겪던 시기 대구적십자병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지난 2010년 적자 누적을 이유로 폐원했기 때문이다. 그 적자의 대부분은 의료 취약계층을 진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착한 적자'였다.
대구적십자병원 폐원으로 국가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 대구에는 사실상 대구의료원 하나 남게 되었다. 인구 243만 대구는 이번 코로나19를 442병상의 공공병원 하나로 맞섰다. 일부 민간 병원도 병상을 제공했지만 역부족이었다. 3월 초, 무려 2천300명이 넘는 확진 환자가 병실이 없어 집에서 대기했고, 초기 사망자 75명 중 약 23%는 입원도 하지 못하고 숨졌다. 약 3만 8천 개의 병상을 자랑하던 '메디시티 대구'의 환자들은 전국의 공공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했다.
물론 공공병원과 공공병상 부족은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공병원은 전체 병원의 5.7%에 그치고, 유사시 국가나 지자체가 동원 가능한 공공병상 역시 전체 병상의 10.2%에 불과하다. OECD국가의 평균 공공병상 비중은 70.8%에 이른다.
그동안 '찬밥 취급'의 설움을 견뎌야 했던 우리나라 공공병원이 이번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공공병원은 신종 전염병 대유행 등 국가적 재난 시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한다. 또한 평상시 취약 계층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의료 안전망 역할도 한다. 아울러 교과서적 적정 진료와 표준 진료를 제공함으로써 민간 의료기관을 선도해 국민 의료비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공공병원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많은 국민들이 민간병원을 이용해 공공병원을 경험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공공병원은 저소득층 진료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국민들에게 공공병원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여러 지자체에서 이미 공공병원 건립에 나서고 있고 부산은 제2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대구에도 평상시 좋은 공공병원 역할을 하다가 유사시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전환이 가능한 약 500병상 규모의 제2 대구의료원 건립이 필요하다. 건립비, 운영비 등을 들어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권영진 대구시장의 말에서 코로나19 교훈을 찾기는 어렵다. 새 공공병원 건립에 최소 3~4년이 소요되므로 서둘러 시민적 합의를 위한 공론화에 착수해야 한다. 물론 코로나 2차 대유행에 대비해 기존 대구의료원의 인력을 보강하고, 중환자 진료 기능을 강화하는 일은 당장 서둘러야 한다.
며칠 전 대구적십자병원 건물에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공공병원 재개원이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피스텔을 세우기 위해 건물이 곧 헐리게 된다. 전공의 시절 주말이면 대구적십자병원에서 몸과 마음이 아픈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했던 추억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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