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딸'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지난주 대구에 왔다. 2017년 대구콘서트하우드 공연 이후 3년 만이다. 3일 힐링콘서트와 4일 리사이틀 때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과 드뷔시 영상2권,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등을 연주해 관객으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몇 번의 커튼콜 끝에 두 곡이나 앙코르 곡을 들려줬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내 고향 대구로부터 연주 의뢰를 받고 꼭 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 연주가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해 데뷔 30년을 맞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4일 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만난 백혜선은 예술가라고 하면 으례적으로 떠올리 수 있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었다. 예민하고 도도하기보다 솔직하고 시원시원했다. 친근하게 말도 먼저 걸어오고 정도 많은 옆집 아줌마 같았다. 화장 안 한 맨얼굴로 기자와 마주 앉은 그의 모습에는 여유가 넘쳤다.
백혜선은 2005년 10년간 근무했던 서울대 교수직을 벗어던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주가에 아들 딸도 있고, 거기다 대학 교수까지 백혜선은 모든 것을 가진 여자였다. 음악하는 학생들은 다들 백혜선처럼 되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백혜선은 어느날 연년생 남매를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나이는 마흔. "교수, 애 엄마, 연주가 1인 3역 모두를 잘 할 수 없었다. 연주활동으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고 아이가 어려 엄마의 손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나를 너무 위로 올려놓았다. 콩쿠르 우승으로 서울대 교수가 됐는데 연주가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그러나 미국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열심히 연주활동을 하고 애를 키우고 있을 2013년 어느날, 클리블랜드음악원에서 교수 제안을 해왔다. 뉴욕과 클리블랜드를 오가며 생활했다. 2018년에는 모교인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도 학생을 맡아달라고 했다. 두 학교에서 오가며 강의하다 지난해부터는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만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백혜선은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다들 저더러 재능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없지는 않지만 남들보다 많지도 않다. 한 가지 가진 게 있다면 무대 위에서의 능력이다. '큰일 났다', '난 죽었다' 하다가도 마지막 순간엔 치고 올라오는 게 있다. 배수진을 치면 없었던 힘이 나오는 뭐 그런 것 있잖아요."
그래서 그는 데뷔 30년이 됐지만 늘 부족한 부분은 연습으로 메운다고 했다.
연주 때 에너지가 폭발하는 그에게 성격이 어떠냐고 묻자 "뭐 하나를 맡으면 몸을 불사르는 성격이다. 원래는 천하태평이고 게으른데 꼭 해야 할 일 앞에서는 물불 안 가리고 완성해 놓는다"고 껄껄 웃었다.

백혜선은 아들 원재(18)와 딸 연재(17)가 잘 자라줘 고맙다고 했다. 그는 "바쁘게 살아 별로 해준게 없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열심히 살았다. 가끔 제 연주회에 아이들이 오는데 엄마처럼 저렇게 노력을 하면 저런 데 설 수도 있구나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원재는 지난해 하버드에 진학했고, 딸은 고3으로 대입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은 첼로를 연주하는데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다닐 정도고, 딸도 오보에를 연주하는 음악가족으로 음악이 소통어다. 원재는 '엄마와 함께 무대에 서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는데 모르겠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백혜선은 10년 전부터 대구가톨릭대학에서 석좌교수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석좌교수를 맡은 건 지역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1년에 10여 일 정도 지도하러 오는데 가끔 범어성당 드망즈홀에서 연주를 하기도 한다"고 했다.
백혜선은 앞으로 여건이 주어지면 봉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50대에 들면서 그런 열망이 더 커졌어요. "철이 들었나 봐요. 결국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베풀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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