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직장 동료들로부터 뒤통수 맞은 일로 괴로워하고 있다. 3년을 같이 일하는 동안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대신해 야근을 대신한 것은 물론이고 황금연휴에 주말 당직 순서를 바꿔주는 일도 허다했다. 나는 싱글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심지어 후배가 힘들어할 만한 일은 먼저 나서서 처리했고, 인센티브도 비슷하게 나눠 갖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사이좋게 나누었다.
그런데 2주 전, 동료들끼리 속닥거리는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내용인즉 이러하다. "○○ 씨는 참 해맑아. 어쩜 사람이 저렇게 속없이 좋기만 할까." "이번에 ○○ 씨가 승진할 차례지. 그것도 양보해 달라고 해볼까. 하하하." 자신이 호구가 된 줄도 모르고 지내 온 시간이 너무 후회된다며 다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친구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러고는 왜 그렇게 퍼주기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동료애이고 배려인 줄 알았다고 한다.
배려는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에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자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배려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정답이 없거니와 '배려' 하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배려심이 지나친 이들은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는 소홀하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이자 대인관계 치료를 보급하는 데 힘쓴 미즈시마 히로코는 '혼자 상처받지 않는 법'(시공사)이라는 책에서 배려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지치는 배려'이고 다른 하나는 '힘이 나는 배려'이다.
지치는 배려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신경 쓰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 여기면 좋겠고 상대방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의 기분을 맞추려 애쓰고 잘 보이는 데 집중한다. 이는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를 신경 쓰는 마음을 담고 있다. 배려의 에너지가 '상대방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사용되기 때문에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면 마음이 놓이지만, 그런 기색이 없으면 신경이 쓰인다. '기분이 상했나?'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내가 이만큼 배려했는데도 전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는 화가 나고 원망하는 마음도 생긴다. 그래서 '다시는 배려 따윈 하지 않겠어!' 하고 다짐한다.
반면 '힘이 나는 배려'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의식하지 않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려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영역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좋은 배려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나의 말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상대를 기만하지 않고 자신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호구처럼 살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 3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의 교수이자 조직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는 그의 저서 '기브앤테이크'(생각연구소)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자신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기버 giver)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테이커 taker)과 '받는 만큼 주는 사람'(매처 matcher)에 비해 업무 성취도나 인간관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가설이다.
착한 사람은 이용만 당할 뿐 성공하기 어렵다는 상식을 뒤엎으며 '바쁜 가운데서도 누군가를 돕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며, 남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하는' 사람, 즉 '기버'가 성공 사다리의 맨 꼭대기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사례와 체계적인 분석, 빈틈없는 논리를 통해 입증해 보였다.
그런데 성공의 사다리 제일 밑에 있는 이들도 '기버'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애덤 그랜트는 두 '기버'가 사용하는 전략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기버'는 최대한 남을 도와주지만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이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즉 이들은 착하지만 당하고 살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제일 밑에 있는 '기버'는 남들을 챙기는 데 급급해서 정작 자신의 일과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말 그대로 호구가 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똑똑한 호구'가 되고 싶은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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