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50여년간 연구한 '동학농민혁명'을 3권으로 총정리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이이화 지음/ 교유서가 펴냄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3·1혁명,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전봉준 압송 장면. 교유서가 제공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3·1혁명,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전봉준 압송 장면. 교유서가 제공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전3권)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전3권)

지난 3월 타계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평생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매진했다. 이 책은 그 결실이자, 유작이다.

저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동학농민혁명에 천착한 이유는 이 혁명이 한국 근대사를 밝힌 상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19세기를 '민란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끊임없이 이어진 민중 봉기는 인간 평등을 추구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초들의 저항운동이었다.

1894년 탐관오리의 수탈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맞서 민란을 일으켰다. 이 고부 민란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확산됐다. 동학농민혁명은 일부 특권층의 토지 소유, 농업 생산의 독점, 신분 차별을 타파하고자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명제를 내걸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농민, 노비, 백정이 주도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나아가 이를 빌미로 농민군 진압을 위해 조선에 파견된 일본의 간섭과 침략에 맞서 싸운 변혁운동이었다.

이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은 이후 3·1혁명,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고 근래의 촛불혁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이 혁명의 민족사적 의의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19세기 말 조선을 뜨겁게 달궜던 농민들의 처절한 저항적 민족주의 정신을 전한다.

저자는 사료를 바탕으로 동학농민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현장의 답사는 물론, 동학농민군 후손들과 현지인들의 증언을 수집해 철저히 고증했다. 그뿐 아니라 조선 관료들의 기록과 일본의 기록물까지 샅샅이 훑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총정리했다. 민초들의 함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200여 장의 자료 사진과 현장 사진도 곁들여 농민혁명 전개 과정을 생생히 느껴보게 한다.

제1권에는 민란이 일어난 19세기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함께 동학의 전파, 농민과의 결합 과정을 담았다. 1862년 삼정문란을 시정해달라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일대에서 농민 봉기가 잇따라 일어났다.

2권에는 일본이 농민군 봉기를 빌미로 조선에 진출해 개화 정권을 수립한 뒤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농민군 섬멸작전에 나선 과정을 실었다. 일본 침략자들은 청나라가 조선에 원병을 보내자 그것을 빌미로 일본군을 한반도에 파병했다.

마지막 3권에서는 전봉준 등 혁명 지도자들이 일본 영사경찰과 권설재판소의 문초를 받아 처형된 과정 등을 살필 수 있다. 동학농민군이 직접 작성해 발표하고 전달한 관련 문서들을 모아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정리했다.

저자는 분단시대의 인문주의자이자 사학계의 녹두장군으로 불린다.

저자는 서문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인간 평등을 추구하고 자주 국가를 건설하려는 용트림이었다. 민중은 국가 권력으로 자행되는 국가 폭력에 맞서 목숨을 바쳤다"며 "게다가 제국주의 열강의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고, 그 저항적 민족주의 또는 생존적 민족주의는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이와 함께 "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실을 기억해 미래 인권과 통일의 유산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각권 264~312쪽. 각권 1만5천~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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