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디지털교도소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온라인에 유포된 자신의 개인 정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세상에 나도는 개인의 흔적을 추적해 삭제해 주는 '사이버 장례' 비즈니스까지 있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기억될 권리' '알 권리'도 있지만 '잊힐 권리'도 있다.

최근 '디지털교도소'라는 이름의 웹사이트가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범죄자를 물리적으로 가두지 않는다. 디지털교도소가 범죄자에게 벌을 주는 방법은 '신상 공개'다. 6일 현재 디지털교도소에는 성범죄자와 아동학대자, 살인 피의자 등 수십여 명의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휴대폰 번호, 혐의 내용, 재판 일정 등이 올라와 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 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한다"며 개설 목적을 밝혔다. 동유럽 국가에 서버가 있고 대한민국의 사이버명예훼손, 모욕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니 누구나 마음껏 댓글과 게시글을 작성할 수 있다고도 했다.

디지털교도소 등장에는 우리나라 사법기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다.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악질 범죄자인데 처벌은 솜방망이이니 '사설 감옥'을 통한 망신 주기를 해서라도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분노의 발로다.

그렇다 하더라도 디지털교도소는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사적 제재(린치)는 일절 허용되지 않으며 이 역시 또 다른 범죄일 뿐이다. 범죄자라 하더라도 신상 정보 공개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우리나라의 형법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한국인이라면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범법 행위 시 처벌받을 수 있기에 디지털교도소에 무심코 명예훼손성 글을 올리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국가가 사법 판단을 법률 전문가(판사와 검사)에 맡기고 3심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어떤 법률적 위임도 받지 않은 개인이 특정인의 죄질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단죄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이는 자경단(自警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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