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터 총장으로 새로운 4년을 보내게 된 신일희 계명대 총장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갔다. 잠시 학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도 있었지만 계명대 총장직을 28년 동안 해왔다. 계명대에 온지 벌써 46년째. 제대로 된 휴가라고는 7년 전 결혼기념일을 이유로 일주일 받은 게 전부다. 게다가 '일벌레'다 보니 직원들은 월요일마다 '업무 폭탄'이 떨어진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장기 집권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꺾이지 않는 신념으로 자신의 소회를 드러냈다.
-이번에 총장 유임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총장직을 고사했다고 들었다.
▶먼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더 좋은 인재를 찾아야 한다는 집념이 강했던 것 같다. 내 자신부터 젊고 유능한 후임자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 차원에서 보면 우리 구성원들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웃음). 아무래도 같은 인물이 총장에 오래 있으면 창의성이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됐다. 총장을 장기로 함에 따라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데 굳이 그런 불필요한 반감을 만들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들이 나와 오랫동안 같이 손을 맞췄기 때문에 일 시켜먹기 편해서 총장을 재차 시켰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각에서는 신 총장이 장기로 집권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도 있다.
▶우리 사회는 누군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강한 편이다. 아무래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대학 총장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일을 한다. 그 만큼 제약이 많다. 시간적인 개념에서의 '장기'보다는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계명대를 논할 때 신 총장의 역할과 능력 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앉혀놓으면 한다. 새 시대에는 새 인물이 필요하다. 나도 40세가 되기 전에 계명대를 맡았다. 외부에서는 대안에 대해 불안하게 볼 수 있겠지만 그 개념은 좀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 취임사에서도 밝혔듯이 계명대에는 아무리 유능한 인재가 와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최소한 학교를 걱정하고 발전을 고민하는 구성원이 전체의 1/3이 모여야 큰 힘이 된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술이나 담배, 골프 등을 전혀 못하지만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계명대도 수많은 난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부 확진자도 나오면서 큰 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최고 책임자로서 어땠나.
▶사태 초반에 중국 유학생들을 받아야 할 떄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말이 '자가격리'지 거의 기숙사에 가둬놓는 형태인데 젊은이들이다보니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했다. 혹시나 자해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규칙을 어기고 밤에 뛰쳐나가거나 원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이 됐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한국에 들어오지 말고 휴학하라고 권유했다. 구성원들이 고생도 참 많이 했다. 특히 학내에 있는 보건소 직원과 기숙사 직원들은 주말이나 밤낮 없이 수시로 점검하고 혹시 모를 확진자 발생에 대비해 모니터링해야 해 누구보다 힘들었다. 계명대 동산병원 의료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제 감염될 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계속 환자를 돌봤다. 정말 위대한 일을 했다. 그 중에서는 모녀 간호사도 있었는데 여러모로 뿌듯하다.
-1학기 내내 대면 강의와 비대면 강의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2학기 때도 혹시 모를 상황이라 학내에 논의가 많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기준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 대학은 기말시험을 대면으로 치뤘다. 대신 시험 기간을 1개월간으로 최대한 늘려 학생들이 분산 등교하도록 조처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은 학교에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창한 계절에 캠퍼스에 와서 꽃도 보고 캠퍼스의 낭만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이 강의만 하는 곳도 아니고 정서 함양이나 인격 형성에 큰 도움을 주는 곳이다. 하지만 1학기 때는 학생들이 그런 것을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그래서 대면과 비대면의 차이가 없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일명 '반(半)대면'을 하는 교육을 해보자고 관련 부서에 주문해놨다. 예들 들어 가상의 대형 강의실 시스템을 만드는 등의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일단 2학기 때는 대면과 비대면을 적절히 섞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신 총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사업인데 이제 개원한지 1년 3개월 정도가 됐다. 성과와 함께 보완할 점이나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해달라.
▶동산병원은 계명대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는 대(大)사업으로, 개원하는 과정에서 정말 힘이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의료진들의 보이지 않는 반발을 극복하고 의지를 하나로 모으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대구 중구 대구동산병원에서 편하게 행정이나 간호일을 할 수 있는데 왜 달서구까지 와서 고생을 하느냐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그러나 다가오는 100년을 위해선 동산병원 개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정신을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힘들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총리 처칠의 예를 들어보겠다. 그는 독일의 대규모 런던 공습이 있던 상황에서도 영국 국민을 계속 독려하면서 영국을 굳건히 지켜냈다. 새 병원을 짓느라 3천억원의 빚을 졌지만 그래도 뭔 훗날 이름에 남길 무엇이 필요했고 그 중의 하나가 동산병원이다. 결과적으로 개원한지 1년 3개월이 지난 현재는 의료진들이 대체로 불만 없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이 개원하고 안정화되기도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한참 때 코로나19 전담병원 맡으면서 유무형의 손실도 많이 봤다고 하는데 어땠나?
▶사실상 재정적인 손실은 무척 컸다. 지금은 다소 복원됐지만 한때는 140억~150억원이 됐다. 하지만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동산병원이 지어지지 않았다면 대구에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터졌을 때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당시에 억지로 병실을 만들어 코로나19 환자들을 입원시켰고 그런 게 결국 성공적으로 코로나19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의료진들의 고생과 투지는 아직까지 감동을 주고 있다.
-오랫동안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거나 뿌듯했던 적이 언제고 가장 아쉬웠던 적은 언젠지 궁금하다.
▶가장 보람된 것은 두 말할 것 없이 '동산병원 개원'이다. 다음의 100년을 준비하는 데 초석을 다졌다는 데 뿌듯하다. 또한 아쉽다기보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 일은 계명대와 현 대구동산병원(중구 동산동)을 통합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잘 끝내 지금도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아직 아쉬움이 남는 것은 현 계명대로 이전하면서 주변 상업부지를 매입하지 못한 것이다. 학교 교육부지를 설정하면서 인근 상업부지를 매입, 개발했다면 지금 수백억원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면 학교 운영에 별 걱정없이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게 두고두고 아쉽다.
-이제 또 다른 4년이 시작됐다. 이번 임기에 최우선 과제나 목표를 설정한 것이 있나.
▶먼저 설립정신을 잊지 않고 살리는 것이다. 우리 대학은 윤리형 인간을 목표로 하는데 현재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4차산업혁명과 관련해서는 상충되는 면이 있다. 대학에서 기능형, 공학적인 인간만을 배출하도록 압박을 받는데 거기에 너무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대구가 극복한 것은 과학기술보다는 섬김의 정신, 즉 봉사정신이었다. 앞으로도 그런 도덕적 인간을 키우는데 큰 주안점을 두고 싶다. 또 대구시가 추진하는 지자체-대학협력사업인 '휴스타'와 관련한 인력을 계속 길러내는 것도 목표다. '대구지역학'을 활성화하는 것도 과제다. 우리나라에 있어 대구경북은 예나 지금이나 중심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인은 양반 정신 영향인지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해 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앞으로 위대한 대구경북을 일깨우고 청년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구경북학'을 크게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싶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대학이 위기다. 앞으로 지역대학들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중요한 것은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학마다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국제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제공되는 온라인 강좌를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국제적인 식견과 언어 소통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대구에 있지만 대학마다 '국제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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