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새벽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진 채 발견되기 전, 박 시장의 전직 여비서가 오랜 기간 성추행을 당했다며 박 시장을 경찰에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적 충격을 낳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여러 성폭력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변호해왔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해 왔기 때문에 국민적 충격은 더욱 컸다.
박 시장이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변호사 시절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을 맡아 수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승소를 이끌어 내면서 '인권변호사, 박원순'으로 명성을 떨치면서부터였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성희롱이 범죄임을 인식시킨 국내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었으며, 1993년 소송 제기 후 6년 만에 피해 여성의 승소로 끝났다. 이 사건의 공동 변호인단 중 한 명으로 소송을 주도했던 박 시장은 그 공로로 1998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제1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박 시장은 이에 앞서 1980년대에는 고 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부천경찰서 권인숙 씨 성고문 사건 변호인단에도 참여했다.
서울시장 취임 후에는 서울시의 성평등 정책, 여성 정책을 주도했다. 모든 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추진한다는 목표로 전국 지자체 가운데 최초로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기도했다.
박 시장은 2012년 '여성의 날'을 맞아서는 '여성의 삶을 바꾸는 서울 비전'을 발표하고 "서울 여성들이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인권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에는 성평등 문제 등에 관해 시장을 보좌하는 특별 직위로 '젠더특보'를 시장실 직속으로 신설했다.
박 시장은 작년 2월 '서울시 여성 리더 신년회'에 참석해 "많은 여성이 저항 주체로서 독립운동(3·1운동)에 참여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게 됐다"며 그 정신은 1987년 민주화 운동, 2016∼2017년 촛불집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미투 운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했던 박 시장이 여비서를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 당하고 경찰수사 대상이 될 위기에 처했던 상황은 '내로남불' '거짓과 위선의 삶'이라는 엄청난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분석이다.
밖으로 드러난 이미지로서의 삶과 실제 살아온 삶의 엄청난 괴리가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의 삶을 비극으로 끝나게 만든 원흉(?)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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