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지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시킨 역풍과 대가는 혹독했다. 가뜩이나 2002년 대선 불법자금 수사 뒤 '차떼기당'이란 멍에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코앞으로 다가온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50석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왔다.
마침내 한나라당은 2004년 3월 24일 허허벌판으로 나가 천막을 쳤다. 총선을 불과 22일 남겨둔 시점이었다. '천막당사'였다. 여의도 공터에 들어섰는 데 수도도, 전기도 들어올 리 없었다.
주역은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전날 당권을 쥔 그는 "부패 정당, 기득권 정당이란 오명에서 완전히 새롭게 출발한다"며 기존 당사 쪽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애초 아이디어는 소장파 '가슴'에서 나왔다. 권영진(현 대구시장), 정두언 전 의원, 정태근 원외위원장 등이 주도했다. 곧 남경필, 권영세, 정병국 의원이 가세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중앙당사 현판을 떼어내며 대국민 사과의 의미를 담아 큰절을 올렸다. '마지막 기회'를 읍소한 박 대표의 행보는 '정치 쇼'라는 비판을 가라앉히며 반전을 이룬다. 열린우리당에서 추진하던 이른바 '개혁 입법'에 맞섰고, 우리당 지도부가 천막 당사로 찾아 협상을 구걸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결국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과 보수성향 중도층의 마음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나라당은 당시 총선에서 121석을 기록했다. 152석을 얻은 우리당에 처졌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한나라당은 총선이 끝난 뒤 6월 16일 서울 염창동 당사로 이전하며 84일 만에 천막을 걷었다.
당시 실무작업을 맡았던 한 당직자는 "'즐풍목우'(櫛風沐雨)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돌아봤다. 바람에 머리를 빗고, 비로 몸을 씻으며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는 의미다. 그런 절실함과 진정성 없이 보수가 활로를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미래통합당은 야성(野性)을 회복하고 대북정책과 외교, 경제 등에 있어 실정을 비판하는 이상의 대안 제시로 국민에게 뚜렷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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