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수관 기피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나뭇가지가 서로 맞닿지 않고 간격을 두고 자라는 자연 현상을 '수관(樹冠) 기피' 라고 한다. 나무 꼭대기에서 뻗은 가지와 잎들이 제 구획을 벗어나지 않고 엄격히 서로 경계를 이루는 행태가 마치 왕관 모양을 닮아 '크라운 샤이니스'(crown shyness)라는 용어가 생긴 것이다.

이 현상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에서 종종 목격되는데 학자들이 1920년대부터 그 원인에 대해 연구해 왔으나 일부 수종에서 목격되는 수관 기피 현상의 생리학적 근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설명하는 많은 가설 중 하나가 잎을 갉아먹는 벌레를 방지한다거나 바람에 의한 가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본능적 행위라는 것이다. 또 가지의 끝부분이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의 양에 매우 민감해 다른 나무가 접근할 경우 생장을 멈추면서 빚어진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수관 기피는 대부분 같은 수종의 나무에서 나타나는데 수종이 다른 나무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르네오 녹나무처럼 잎에서 에탄올 성분이 방출돼 다른 나무의 접근을 막는 사례가 관찰된다. 말레이시아 용뇌향나무에도 비슷한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무 개체 사이의 틈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햇빛을 숲에 받아들이면서 광합성 작용과 해충·질병을 막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처럼 식물이 거리를 두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자 조화로운 생장이라는 자연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확산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많은 확진자를 기록한 미국은 하루에 4만~6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비상사태다. 한동안 잠잠하던 일본·호주 등에서도 연일 수백 명의 확진자가 쏟아지고 있다. 하루 10명 안팎이던 우리나라도 5월 10일 34명으로 치솟은 이후 두 달째 매일 30~70명을 기록하는 등 코로나의 기세가 여전하다.

아직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대한 소식은 없다. 사태가 7개월째 이어진 탓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 경계심이 훨씬 옅어진 것도 사실이다. 수관 기피처럼 식물의 타감(他感) 작용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우리도 보다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을 피해 가는 지혜를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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