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드라마 복귀작이라는 기대감으로 봤는데 보면 볼수록 조용 작가와 박신우 연출자가 새롭게 보인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멜로드라마의 틀을 가져왔지만 그 안에 만만찮은 세계에 대한 대결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잔혹동화로 꼬집는 현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부제는 모두 동화들로 채워져 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빨간구두',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푼젤', '푸른수염', '미녀와 야수' 같은 동화에서 따온 제목들도 있지만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좀비 아이', '봄날의 개' 같은 이 드라마를 쓴 조용 작가가 직접 쓴 동화들도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동화들, 특히 작가가 직접 쓴 동화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권선징악의 해피엔딩을 그려내는 동화가 아니다. 기존 동화의 세계를 뒤집어놓은 이른바 '잔혹동화'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첫 회 시작과 함께 들려준 첫 번째 동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은 죽음의 그림자를 끌고 다녀 그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 괴물로 불린 소녀가 강에 빠진 소년을 구해주고 함께 다녔지만, 결국 두려워 소년이 도망치자 엄마가 '넌 괴물이라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해주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 첫 번째 동화는 이 드라마 속 문영(서예지)과 강태(김수현)가 어려서 겪은 사건들을 담고 있다. 동화 속 소녀는 문영이고 소년은 강태다. 숲 속 대저택에서 살았던 문영은 자신에게 정신병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에 속박된 채 학대받았고, 그러던 어느 날 강물에 빠진 강태를 구해줬지만 그 역시 도망치고 말았던 것. 드라마 속 동화작가 문영이 쓴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은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동화가 말하는 건 '그래도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그렇게 냉혹하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은 '좀비 아이' 같은 동화를 통해 더 극적으로 제시된다. 감정이 없고 식욕만 있는 좀비로 태어난 아이. 그래서 엄마는 아이를 지하실에 가두고 밤마다 남의 집 가축을 훔쳐 먹이를 주며 키웠는데, 역병이 돌아 먹을 게 없어지자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팔 다리를 잘라주고 남은 몸을 맡기는 엄마. 그런데 아이가 몸통만 남은 엄마를 꼭 끌어안으며 처음으로 던지는 말이 반전이다. "엄마는 참 따뜻하구나." 이 동화는 평범하지 않아 특별(?)하게 키워진 문영이 원했던 것이 결국은 온기였다는 걸 담는다. 다르다는 이유로 존재가치가 부정된 이들 역시 누구나 온기는 필요하다고.
◆달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마치 팀 버튼의 세계가 그러하듯 다소 어둡고 비극적이지만 그 속에서도 동화 같은 따뜻함 같은 게 느껴진다. 문영과 강태가 다시 만나 사랑해가는 그 멜로가 드라마의 겉옷이지만, 그들의 사랑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떻게 감싸 안아주며 그를 통해 살아갈 수 있게 하는가를 담는다는 의미에서 '인간애'로 확대된다. 나아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이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차별당하는 현실까지 그 멜로 속에 들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다분히 비판적인 사회극의 특징까지 보여주고 있다.
즉 강태와 문영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된 건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강태는 어려서부터 자폐를 가진 형을 지켜야 하고 자신은 그래서 존재한다는 엄마의 말에 상처 입었다. 문영은 자신에게 집착하며 마치 자신을 그의 작품처럼 여기며 속박하는 엄마로부터 학대받았다. 문영은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빈 깡통'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고, 강태는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채 형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이를 은유적으로 해석해 들여다보면 어른들에 의해 상처받고 평범하게 살 수 없게 된 이들이 서로 만나 그 상처를 치유해주는 과정이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런데 이처럼 어른들의 잘못으로 사랑조차 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에 서 있는 문영과 강태에게서 떠오르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지금의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다. 거듭된 경제위기에 치열해진 취업 현실 속에서 결혼은커녕,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기며 일찌감치 많은 걸 포기해버린 채 살아가는 청춘들. 물론 드라마의 배경인 '괜찮은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더 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묵직하게 찌르는 건 강태와 문영으로 대변되는 청춘의 초상들이다.
이런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7회에 담았던 '봄날의 개'라는 동화의 메시지가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낮에는 잘 놀아서 봄날의 개로 불리던 개가 밤만 되면 울었는데, 사실 그건 목줄을 끊고 봄의 들판을 마음껏 뛰어 놀고 싶지만 오래 묶여 있어 목줄 끊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동화. 지금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봄날의 개 같은 존재들이 하루하루를 웃음으로 위장하지만 밤이 되면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현실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무수한 금기에 갇혀 심지어 평범한 삶조차 꿈이 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조금 달라도 스스로 묶어둔 속박을 벗어버려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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